지난달 초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40여 일 만에 관객 1080여 만 명을 동원했다. 세계적으로는 2억 명 정도가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흥행에 힘입어 수많은 오뒷세이아(오디세이아) 강연이 행해지고, 관련 서적이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낸다, 낸다 소문만 무성하던 오뒷세이아 원전 번역도 드디어 출간돼 하나둘씩 서점가에 쌓여간다. 인터넷에서는 평소 관심을 끌지 못하던 호메로스 연구자들이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명 나게, 언제 또 받아볼까 싶은 잔칫상을 받아놓고 모든 걸 탕진하려는 듯 춤추고 노래하고 눈을 돌리는 곳마다 난리법석이다. 심지어 은퇴하신 은사님마저 유튜브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오뒷세이아를 평생 읽은 연구자가 오랜만에 소환돼 깊이가 다른 문학 이해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런 흔치 않은 호사를 누린 것도 다 영화 덕분이리라. 지금은 호메로스 번역자로 이름을 날리는 학자가 당시 은사님의 오뒷세이아 강독 시간에 학생으로서 내용 요약을 맡았는데, 선생님이 신기하게도 모든 중요 대목은 요리조리 피하며 모조리 빼먹은 요약이라는 촌평을 날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과연 그의 갈팡질팡 요약은 방랑 이야기를 전공할 학문적 자질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에게 납치된 아름다운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소아시아 땅을 찾아온 아가멤논 등 그리스 전사들의 전쟁 이야기를 일리아스라고 하며, 마침내 헬레네를 되찾아 트로이아 전쟁을 마치고 그리스 전사들이, 특히 오뒷세우스(오디세우스)가 타고 온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오뒷세이아라고 한다. 오뒷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래는 오늘날 다른 전사들의 귀향 이야기를 압도하는 길이를 자랑하는데, 그것이 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지에서 떠돈 모험과 방랑의 사연들이 보태졌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학의 최고봉을 차지한 출향과 귀향의 이야기는 어떤 연구자에 따르면 그리스의 본향에서 쫓겨나 소아시아 해안에서 새로운 둥지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던 망명자 신세의 그리스인들이 정착을 위해 싸우고, 마침내 승리해 안정을 취하고, 승리자로 고향에 돌아가서 자신들을 몰아낸 자들을 물리치겠다는 민족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일리아스에서 그리스 군대가 원정군으로 그려진 것은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의 반영이고, 오뒷세이아에서 청혼자들을 남의 것을 차지하려는 불의한 자들로 그려놓은 것은 그리스 본토를 차지한 못된 세력을 돌아가 몰아내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떠났던 자들이 돌아오는 귀향자의 이야기는 동시에, 고향에 남아 굴욕을 참으며 죽음 같은 세월을 견디는 자들에게는 언젠가 돌아와 고통과 불행을 물리치고 자유와 생명을 회복시켜 줄 구원자 이야기다. 재산을 갈라 먹는 청혼자들에게 더는 저항할 힘이 남지 않은 늙은 아버지, 적들의 매복과 음모 가운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아직 어린 상속자 아들, 홀로 시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돌보며 미약한 힘이나마 영리한 꾀를 보태어 집안을 지키며 버텨내는 아내, 이들을 갈취와 협박, 위협과 음모에서 구원할 사내는 멀리 떨어져 있고 이제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희망마저 다한 어느 날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결국 남편을 새로 정하기 위해 경연을 제시한다. 활에 시위를 걸어 도낏자루 12개를 뚫는 도전이었다. 하나둘씩 청혼자들이 나자빠지는 가운데 어제저녁 찾아온 거지 몰골의 늙은 나그네가 나선다. 가장 미천한 자의 모습으로 찾아온 도전자는 마침내 정체를 드러낸다. 그가 바로 구원자 오뒷세우스였다. 오뒷세우스는 불의한 청혼자들을 깡그리 제거하고 가족을 위기에서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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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을 감행해야 하는 때가 각설이처럼 다시 찾아왔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귀향이라는 녀석은 그저 얼른 지나가길 바랄 뿐인 성가신 연례행사가 돼 버린 지 한참이다. 최근 기차 예매일에 맞춰 아침 일찍 접속하니 11만 명이 대기 중이라는 안내가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한가해지겠거니 생각하고 일단 예매 창을 닫았다. 오후에 다시 접속하니 사람이 더 늘어 77만 명이 대기 중이라고 안내한다. 다음 날 상황은 전석 매진이었다. 아마도 영화 ‘오디세이’가 모두에게, 그대들은 빼앗긴 땅을 다시 찾아가 되찾고 핍박과 억압 속에 고통받는 가족을 구원해야 한다는 가족애의 사명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분명하다. 장부가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나왔으니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서야 어찌 고향에 돌아갈까 보냐 하는 웅대한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타향에서 그래도 보란 듯이 당당하게 돌아가는 걸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므로, 지금은 늙고 병들어 고향을 때로 멀리하게 된다. 고향 가는 이야기 때문에 고향에 못 간다는 것은 핑계처럼 들리지만, 아쉽게도 올해는 고향에 못 간다는 발명이 수월해지고 보니 한편으로 마음이 편하다. 영화 ‘오디세이’ 덕분이라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