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내용 만큼 타이밍이 중요하다. 정책학자 존 킹던은 문제·정책대안·정치라는 세 흐름이 만날 때 정책 변화의 기회, 즉 ‘정책의 창’이 열린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책의 창은 정치가 열지만 정치에만 의존하는 정책의 창은 오래 열려 있지 않는다. 6·3 지방선거는 부산에 다시 정책의 창을 열었다. 전재수 부산시장과 김상욱 울산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반면 박완수 경남지사는 국민의힘이다. 부산과 울산에는 정치적 연대의 가능성이 생겼지만 경남과는 초광역 협력의 방식과 수준을 놓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더구나 부산과 울산은 시장의 소속 정당과 시의회 다수당이 다르다. 창은 열렸지만 결정의 정치는 오히려 복잡해졌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정책의 창을 연 정치와 그 창을 통과해야 하는 정치가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중앙정부와 부산시의 정치적 관계는 우호적이지만 부산시와 시의회의 관계는 다르다. 하나의 창 안에서 서로 다른 정치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중앙정치의 변화가 부산에 기회를 만들었다면 지역의 정치지형은 정책의 현실화에 제약이 될 수도 있다.
부산은 부울경 메가시티 좌초를 경험했다. 초광역 협력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우호관계 자체를 정책 추진의 기반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부울경의 지역 간 정치적 차이와 내부의 정치적 차이라는 ‘이중의 정치’를 고려하면서 정치적 변화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을 재촉하는 또 하나의 변화는 5극3특이라는 새로운 지역발전 질서다. 지역 경쟁의 단위가 개별 도시에서 초광역권으로 이동했다. 그런 점에서 전남광주의 행정통합은 부산에 적지 않은 메시지를 던진다. 물론 부산이 같은 길을 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산이 어떤 기능과 공간적 범위로 경쟁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할 시간이 왔다는 점이다.
그 출발점은 전재수 시장의 핵심 공약 ‘해양수도 부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해양수도가 전 시장의 공약 내지는 부산에 기관과 사업을 더 가져오는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부산의 항만·물류·해양산업을 울산의 제조업, 경남의 우주항공·방산·기계산업과 연결하는 동남권 성장전략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부산항과 해양산업 경쟁력 역시 부산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울산과 경남의 산업과 물류망이 연결될 때 가치도 커진다.
그래서 메가시티냐 행정통합이냐를 먼저 결정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부산은 무엇으로 성장할 것인가? 울산과 경남은 왜 부산과 함께해야 하는가? 그리고 정치가 바뀌어도 지속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 세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통합은 목적이 아니라 부산과 동남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거대한 제도적 결정을 서두르기보다 광역교통과 산업, 인재, 항만·물류처럼 공동의 이익이 분명한 영역에서 실질적 성과를 축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정치의 시간은 길지 않다. 집권당 부산·울산시장, 중앙정부의 5극3특 전략, 광주·전남의 새로운 선택이 동시에 나타난 지금은 흔치 않은 기회다. 총선과 대선, 다음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정치적 이해관계는 다시 움직일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서둘러서도 안 된다. 짧은 정치의 시간은 빨리 결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정치적 변화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선택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결정의 기준도 여기에 있다. 부산만의 이익이 아니라 동남권의 공동이익을 만들고, 정치적 저항을 넘어설 수 있으며, 정치가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는 결정이어야 한다. 모든 것을 한 번에 결정할 필요도 없다. 무엇을 먼저 선택하고, 무엇을 제도와 사업으로 남길 것인지가 중요하다.
정책의 창이 열렸을 때 필요한 것은 정치적 우위를 이용한 ‘빠른 결정’이 아니라 정치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남아 있을 좋은 결정’이다. 열린 정책의 창을 부산 도약의 기회로 만들 것인지는 결국 짧은 정치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남기느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