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시작된다. 2028년 3월 부산해사국제상사법원 임시청사가 문을 연다. 부산·경남·울산을 비롯해 대구·경북, 호남과 제주까지 남부권 전역을 아우르며 해사민사와 해사행정, 국제상사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원이 부산에 자리를 잡는다. 오랜 기간 ‘해양수도’를 지향해 온 부산으로서는 의미가 크다.
기관과 기업이 모이면 그 주변에는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진다. 해운기업의 활동과 국제거래가 늘어나면 계약과 분쟁, 기업 법무 수요가 커진다. 기업 투자가 증가하면 회계·세무와 금융, 노무, 특허, 통관·물류 등 전문서비스의 필요성도 커진다. 산업이 성장하면 그 산업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산업이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부산에만 머물지 않는다. 부산과 경남은 항만·물류와 제조업으로 연결된 하나의 산업경제권이다. 부산신항을 중심으로 한 물류산업과 창원·김해·거제 등 경남의 제조업 기반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부산의 법률·회계·금융 등 전문서비스 역량이 커진다면 그 효과는 경남의 제조기업과 투자기업에도 이어진다. 최근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경자청)이 추진하는 ‘BJ-INVESTIA’도 이러한 변화와 맞닿아 있다. 이 사업은 투자(Invest)에 공간·영역을 의미하는 ‘-ia’를 결합한 명칭으로, 기업의 투자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투자지원 플랫폼이다.
투자유치의 방식은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산업용지와 세제·보조금 등 인센티브만으로는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힘들다. 외국인투자 신고와 법인 설립부터 계약, 규제 대응, 자금 조달, 세무·회계, 통관·물류, 인력 확보까지 기업이 검토해야 할 사안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얼마나 빠르고 전문적으로 해법을 찾을 수 있느냐 역시 중요한 투자환경이다. 그래서 필자는 투자유치를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한다. 행정기관의 노력만으로 기업 하나를 유치하고 정착시키기는 어렵다. 법률·회계·금융·물류·인력·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
‘BJ-INVESTIA’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입지·설계, 투자·설립, 금융·인센티브, 통관·물류통상, 인력·정주, 혁신성장 등 6개 분야의 전문기관을 연결해 기업과 경자청, 전문가가 함께 해법을 찾는 구조다.
6월 김·장 법률사무소를 시작으로 7월 법무법인 태평양, 8월에는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하는 법무법인 국제와 정인, 성현회계법인에 이어 법무법인 세종, 삼일회계법인도 참여했다. 9월에는 NH농협은행도 금융 분야 전문기관으로 함께할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전문성과 경험을 투자기업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느냐다. 앞으로 금융·인센티브, 통관·물류, 인력·정주, 입지·설계, 특허·기술사업화 등으로 협력의 폭도 넓혀갈 계획이다.
기업이 모이고 활동이 활발해지면 새로운 서비스 시장이 생기고, 전문서비스의 성장은 다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이러한 선순환이 쌓일 때 지역은 스스로 기업과 자본을 끌어당기는 산업경제권으로 성장할 수 있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에는 르노삼성자동차, 윌로펌프, 조광요턴, ㈜부산케이블앤엔지니어링, 한국쯔바키모토오토모티브㈜ 등 220여 개 외국인투자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경자청은 7월 ‘BJFEZ 외투기업협의회’를 출범시켜 기업과 전문가가 규제와 경영 애로를 함께 해결하는 협력체계도 구축했다.
기업 활동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기반은 사법 인프라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명지국제신도시에는 사법·법률 인프라가 형성되고 있다.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오는 10월에는 부산지방중대범죄수사청도 들어설 예정이다.
2028년 임시청사에서 출발하는 부산해사국제상사법원의 정식 청사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해사법원은 해운·항만과 국제상거래, 기업 활동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법 인프라다. 정식 청사 입지를 논의할 때 산업과 기업, 전문서비스와의 연계성도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강서구 명지동은 충분히 검토할 만한 선택지다. 사법·수사기관과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내 220여 개 외국인투자기업이 집적돼 있고, 부산신항과 앞으로 들어설 진해신항·가덕도신공항과의 연계성도 갖추고 있다. 해사법원까지 더해진다면 명지는 국제 비즈니스와 기업 활동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법률·전문서비스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다.
부산해사국제상사법원과 ‘BJ-INVESTIA’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기업 활동을 뒷받침하는 환경을 촘촘하게 갖춘다는 면에서는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해사법원 정식 청사 입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산업적 관점과 기업의 수요가 충분히 고려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