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후 지구 대기에 막대한 탄소를 풀어넣으면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증가, 해수면 상승 등이 현실로 다가온다. 그 영향으로 생물서식지 파괴와 종 다양성 감소와 같은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기온 상승의 영향으로 일어나는 일이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 주기도 한다. 빙하 해빙이 그중 하나다.
북극 해빙 면적이 줄고 얼음 두께도 얇아지면서 북극항로가 새로운 해상 운송로로 주목받는다. 지난달 22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북극항로 컨테이너선이 시범 운항에 나섰다. 기존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항로를 대신해 부산항과 유럽을 가장 짧게, 빠르게 잇는 항로다.
시범 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는 베링해를 지나 북극해역에 진입해 해빙이 떠다니는 바바를 헤치고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이에 앞서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가 한 달 동안 태평양에서 북극해로 진입하는 관문인 척치해와 동시베리아해를 탐사하며 팬스타 아크로호가 지날 항로의 해빙과 해양환경을 관측하며 지원에 나섰다. 관측 결과 척치해와 동시베리아해 북부의 고위도 해역에는 해빙 두께가 비교적 얇다는 걸 확인됐다. 아라온호의 경로를 뒤따른 팬스타 아크로호는 북극해역을 통과한 뒤에는 영국과 네덜란드, 폴란드의 항만에 기항한 뒤 되돌아오는데, 왕복 총 운항 거리 3만㎞ 가운데 북극해를 6400㎞ 운항한다.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의 거리만 보면 약 1만3000㎞로,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기존 항로보다 7000㎞ 짧다.
이처럼 북극권은 인간이 해빙과 해류를 관측하고 얼음 바다를 견디는 선박을 건조하고 항해하는 과학과 기술을 겨루는 장소가 됐다. 하지만 북극해 일대는 탐사와 탐험의 대상으로 인간의 용기와 인내를 시험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인간이 두꺼운 얼음을 뚫고 북극해로 들어선 것은 수백 년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과 시베리아, 베링해를 연결하는 북동항로에 앞서 유럽에서 캐나다 북쪽을 거쳐 베링 해협으로 빠지는 북서항로에 대한 도전이 먼저 이뤄졌다. 1845년 존 프랭클린 제독이 이끈 영국 탐험대는 두 척의 배와 129명의 대원이 북극 해빙에 갇혀 실종되는 비극으로 끝났다. 이후 북동항로 개척에 이어 1893년 프람호를 타고 떠난 노르웨이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은 3년에 걸친 항해로 북서항로 개척을 넘어서 더 멀리 북쪽으로 올라가 북극점 탐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북극해에는 탐험가들의 도전이 이어졌다. 우리나라 산악인이자 탐험가 허영호는 1995년에 북극점을 경유하는 북극해 횡단에 성공했다. 1978년 단독으로 북극점에 도달했던 일본의 우에무라 나오미는 이에 앞서 1974년 12월 그린란드에서 출발해 1년 2개월의 대장정 끝에 북극권 1만2000㎞를 도보로 주파해 알래스카에 도착했다. 그가 쓴 1975년 4월 11일의 일기에는 ‘~100만분의 1 지도로는 세밀한 지형이나 빙하 상태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번 각도를 잘못 잡으면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워진다. 하늘이 맑아서 시야가 트이면 곶과 산의 형태로 어떤 식으로든 위치와 방위를 알 수 있다.~’고 종이 지도와 감각에만 의지한 길 찾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항해와는 달리 우에무라는 얼음이 녹아 이동하기 어려운 여름 6개월은 휴식했다. 실제로는 8개월에 걸쳐 이번에 팬스타 아크로호가 이동하는 부산~로테르담 거리에서 1000㎞가 모자라는 거리를 도보로 이동했다.
북극항로의 개척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경제적 득실을 계산한다. 하지만 50년 전만 하더라도 탐험가가 걸어서 지나던 북극 해역의 얼음이 빠르게 진행되는 기후변화로 사라지는 건 기회이기 이전에 인류에게 닥친 절박한 위기 중 하나다. 우리나라가 유례없는 폭염과 혹독한 가뭄 뒤에 극한 호우를 겪은 게 불과 얼마 전 일이다. 이런 기상이변의 이유로 전문가들은 주저 없이 지구 온난화를 꼽는다.
지난달 26일 발생한 네팔 대홍수도 마찬가지다. 카라코람, 힌두쿠시 산맥을 포함해 흔히 히말라야 산맥으로 통칭하는 3500㎞ 산맥의 6만3000여 개 빙하는 중국과 인도 베트남 등을 적시며 흘러 20억 명 인구의 젖줄이 되는 양쯔강, 갠지스강, 메콩강 등에 물을 공급한다. 그런데 유엔에 따르면 2010∼2020년 히말라야 빙하의 소멸 속도는 이전 10년보다 65% 더 빨라졌다. 네팔 정부가 “네팔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사실상 미미한데도 우리가 초래하지 않은 지구적 위기의 궁극적인 대가를 우리가 치르고 있다”며 온실가스 주요 배출국인 중국 미국 인도에 대해 네팔처럼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에 보상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 책임에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기회의 바다 북극해가 인류에게 기후변화의 위기를 경고해 주는 바다이기도 하다는 걸 뼛속깊이 깨달아야 할 시기다.
이진규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