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중국에 갔던 1992년 6월은 개혁·개방이 다시 시작된 설렘이 충만했던 시점이었다. 나는 그때 옌지(延吉)와 훈춘(珲春) 등 중국 동북 지역을 방문해 조선족 동포들의 생활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특히 그때 만났던 조선족 동포 친구들을 통해서 훈춘이 향후 중국 개혁·개방의 새로운 상징이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어떤 이는 동북의 선전(深圳) 즉 경제특구가 될 거라고도 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1991년 유엔개발계획(UNDP) 지원으로 시작된 동북아시아 다자 간 경제 협력 구상이 있었다. 그 이름은 두만강 유역 개발계획(TRADP)으로 불리었다. 즉 이 개발계획은 UNDP 주도하에 두만강 하구 유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국가들의 국제경제특구 개발 구상인 셈이다. 1991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UNDP 동북아 조정실무관회의에서 발족이 결정될 정도로 북한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두만강 유역에 대규모 공단 등을 조성하기로 하고 사업에 남한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 몽골 등이 참가했다. 2005년 9월 대상 지역을 확대하고 공동기금을 설립해 광역두만개발계획(GTI)으로 전환했다. 2009년 북한이 합동위원회에 탈퇴를 통보해 지금까지 제한적인 개발에 머물고 있다.
북한이 2009년 11월 두만강개발계획 합동위원회 탈퇴를 통보할 당시의 국제 정세는 북한의 연이은 군사 도발, 이로 인한 유엔 안보리의 강력한 대북 제재, 그리고 대화 국면의 전면 중단으로 압축할 수 있다. 즉 북한은 2009년 4월 ‘광명성 2호’ 위성을 탑재한 로켓을 발사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이를 사실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로 규정하고 즉각 규탄했다. 유엔 안보리가 로켓 발사를 비난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하자, 북한은 이에 반발하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의 전면 거부와 불참을 선언했고 북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5월 25일 제2차 지하 핵실험을 전격 감행하며 국제사회와의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북한의 제2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는 2009년 6월,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금융·경제 제재를 담은 대북 제재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두만강개발계획은 UNDP가 주도하는 다자 간 구상이었기 때문에,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가 가동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다자 틀 안에서 정상적인 경제적 실익이나 원조를 기대하기는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북한은 제재망을 우회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와의 개별적 양자 경제 협력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북한의 양자 협력 올인 전략은 국제 제재 속에서도 정권을 유지하고 국경 물류망을 확보하는 임시방편이 됐으나, 글로벌 자본 유입을 막아 개혁·개방의 기회를 날리고 대외 경제적 종속만 심화시킨 외통수이기도 했다.
최근 국제 정세의 많은 변화가 포착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북한이 치를 떠는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했다고 한다. 그 이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 질의응답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대화 제안에 응했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연내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확언하며 적극적인 대화 재개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러면 누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만남을 주선했을까.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들이 오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것을 보면, 중재자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6월 8일 올해 시 주석의 첫 해외 순방지가 평양임은 우연이 아니다.
이보다 앞서 5월 13~15일 2박 3일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개최했는데 공동 선언에서 두만강개발계획을 명시했다. 그 회담은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지 불과 6일 만에 같은 장소에서 개최되면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을 오는 24일 백악관에 초청했다. 거대한 지정학적 변동을 알리는 신호다. 초강대국들의 거래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상황에서 두만강개발계획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두만강개발계획은 동북아 지역의 유일한 정부 간 협력 사업이라는 의미가 있다. 즉 두만강개발계획의 발전 여하에 따라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지속적인 경제 성장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