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옆에 작은 계곡이 있다. 비가 오면 물이 졸졸 흘러 내려온다. 거기에 자연적으로 생긴 연못이 있다. 크지는 않지만 다슬기가 살고 송사리와 피라미가 떼를 지어 노닌다. 가끔 두꺼비가 놀러 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뱀이 물을 먹으러 오기도 하니 그야말로 오염되지 않은 청정 지역이다. 나는 여기서 물을 떠다 끓여 마시고 텃밭에도 뿌려준다. 이곳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항상 신경 쓰고 있는데 한 번은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났다. 옆집 아저씨가 사전 통보도 없이 개를 끌고 오더니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털을 벗기는 것이었다. 너무나 끔찍해서 등에 소름이 쭉 끼쳤다. 그런데도 그 집은 터줏대감이라 사이가 나빠질까 봐 아무 말도 못했다.
하여간 여러모로 편하게 쓰던 연못이 지난 가뭄에 바짝 말라버렸다. 늘 물이 차 있었는데 바닥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었다. 내 텃밭에는 수도가 없고 지하수도 파지 않았기 때문에 난감했다. 할 수 없이 지하수가 있는 이웃집에 가서 마실 물을 얻어 오고 밭에는 저수지 물을 대어 주었다. 그나마 텃밭 옆에 저수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비가 두 달 이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주말마다 텃밭에 가면 양수기를 돌리느라 바빴다. 텃밭 농사는 취미 생활이라 포기해도 큰 손해는 없지만 아직 살아 있는 생명을 방치하자니 마음이 쓰였다. 조금 힘들어도 텃밭에 가면 물을 대어 주는 게 일과였다. 하늘은 야속하게 계속 맑았고 바라는 비 대신에 불화살을 마구 쏘아대기만 했다. 양수기를 돌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주기 때문에 코끼리 비스킷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은 텃밭에 갔더니 뜻밖에도 연못에 물이 조금 차 있는 게 아닌가!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주변에 있는 밭들도 폭염으로 난리가 났는지 마을 이장이 산 위에 있는 저수지 수문을 열었단다. 하지만 그 물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일주일쯤 지나니 연못은 다시 바닥을 드러내고 몸져누웠다.
비는 도무지 내릴 기미가 없고 불볕더위가 이어져서 점점 피해가 늘어났다. 방울토마토와 오이는 어느새 말라 죽었고 상추도 반 이상 시들어버렸다. 가지는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열매가 통 달리지 않았다. 겨우 달걀만 한 것이 몇 개 달려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파랗게 살아있는 고추가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랬는데 태풍의 영향으로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태풍이 그때만큼 고마운 적이 없었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간절하게 기다리던 비가 실제로 내리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는 이틀이나 계속해서 내렸다. 어떤 지역에는 폭우로 피해가 컸다고 하지만 여긴 알맞게 와서 다행이었다. 지금쯤 텃밭에 있는 생명들은 얼마나 기뻐할까? 한시라도 빨리 달려가 보고 싶었지만 바쁜 일이 있어서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텃밭에 가는 날이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빨리 가보고 싶어 좀이 쑤셨다. 텃밭에 도착하자마자 계곡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그동안 워낙 가물었던 탓인지 비가 제법 많이 왔는데도 연못에는 물이 3분의 2 정도만 차 있었다. 그마저도 감사했다. 내가 노력한 것도 아닌데 하늘이 거저 내려준 복이 아닌가! 당분간은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시원한 연못에 손을 담근 채 찰박거리고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속에도 연못이 있다면 얼마나 넓을까? 물은 어느 정도 차 있을까? 나는 살아오는 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단비 같은 존재였을까?’
나만을 위해 사는 삶은 손바닥만 한 연못과 같을 것이다. 게임이나 오락에 빠진다면 도파민이 팡팡 터져 자신은 즐거움을 한껏 누리지만 그러는 사이에 마음속의 연못은 점점 메말라 갈 게 뻔하다. 책을 읽으며 사색하고 남을 배려해야만 물이 가득 차지 않을까? 작가라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리라. 작가가 쓴 글을 독자들이 읽고 크게 공감할 때 마음속에 촉촉한 단비가 흡족하게 내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