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행진을 이어오던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난기류를 맞으면서 그간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정부의 여러 정책도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당장 지난 25일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 계획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정부 발표는 없었다. 그동안 8, 9월께 공공기관 이전 계획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하던 국토교통부 김윤덕 장관도 지난 24일에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해 10, 11월 정도로 예상한다”고 발표 시점을 늦췄다.
하필이면 ‘공공기관 2차 이전 발표’가 예정됐던 시기가 지지율 하락 시점과 겹쳤다. 주식하락, 부동산 정책 혼선 등으로 정부 정책 신뢰도가 급락한 상황에서 공공기관 2차 이전까지 발표하면 더불어민주당의 표밭인 수도권의 여론이 급전직하할 수 있다는 것이 청와대와 여당의 판단으로 보인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혁신도시 건설’ 이후 역대 정부의 국가균형발전정책 추진 경과를 돌이켜보면 이 같은 일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국가균형발전은 항상 국정과제의 후순위로 밀렸다는 씁쓸한 현실을 곱씹게 될 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출발한 ‘국가균형발전’ 철학은 보수가 집권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지역균형발전’으로 추진됐다. 보수정부가 ‘국가’ 대신 ‘지역’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균형발전에의 의지가 퇴보한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는 다시 국가균형발전으로 명칭이 달라졌다. 윤석열 정부에선 ‘지방시대’를 앞세웠고, 이재명 정부는 ‘5극3특 국토공간대전환’ 추진에 나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이름과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대통령직속위원회 조직에 변화를 주지만 손에 꼽히는 성과는 없다. 역대 정부가 균형발전이란 국정과제를 제대로 집행했다손 치더라도 수도권·비수도권의 격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았을 것인데, 이마저도 제대로 집행하지 못한 결과다. 국세와 지방세 비중을 6:4로 맞추겠다는 재정분권 얘기가 나온 지 10년이 되도록 아직도 그 비율은 7:3에 머무른다. 지역에서는 공공기관 2차 이전이 언제,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지만 이 문제야말로 오래된 희망고문이다.
2020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공공기관 2차 이전 관련 질문에 “총선을 거치면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당시 4·15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표를 의식한 입장을 낸 것으로 해석되면서 지역에선 비판 여론이 일었다. 그해 총선에서 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수도권 지역구 121석 중 103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수도권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민주당의 브랜드 정책이나 마찬가지인 ‘공공기관 지방 이전’ 추진 동력에 힘이 빠지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전임 민주당 정권에서 균형발전 성과가 없었던 까닭에 이재명 대통령의 5극3특 구상에 대한 기대치가 애초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취임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도권 집중 성장시대 끝내야 한다” “지역에 투자하면 대규모 지원을 하겠다” 등 수도권 집중을 완화해야만 수도권의 부동산·교통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지론을 꾸준히 밝혀왔다.
특히 기자회견 등에서 부동산 문제를 질문해도 이 대통령은 반드시 국가균형발전 문제를 언급했다. 기업 인구 재화 등이 지방으로 분산되면 자연스럽게 ‘수도권 부동산 문제’가 해소된다는 점을 유독 강조했다. 특정 지역 퍼주기라는 논란도 있지만, 호남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도 그 일환이라고 하겠다.
지난주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중앙지방협력회의, 시·군·구청장협의회 등과 릴레이 간담회를 갖고 수도권 집중에 따라 수도권은 폭발 위기에, 지방은 소멸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며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와 ‘5극 3특’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진단도, 해법도 정확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정교한 정책 수립과 이를 흔들림 없이 이행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등의 극심한 반대에도 혁신도시 조성과 공공기관 이전을 단행하며 균형발전 의지를 실천으로 입증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균형발전에 대한 기대치만 높였을 뿐, 공공기관 2차 이전을 두고 장고만 거듭하다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정부의 부동산 세제개편안을 두고 민주당의 수도권 의원들이 정책 수정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당장 수도권 표심을 앞세워 공공기관 지방이전에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수도권 문제의 해법은 지방 분산이라는 것을 잘 아는 이 대통령이 좌고우면 하지 않고 뚝심을 발휘해야 할 때다.
김태경 서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