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올해 초 발표한 2025~2030년판 ‘미국인을 위한 식생활 지침(Dietary Guidelines for Americans)’은 단순한 영양 권고가 아니다. 앞으로 5년간 미국인의 식탁은 물론 그 식탁을 떠받치는 시장·유통·공공조달 구조 전체를 흔들 정책 신호탄이다.
이번 지침의 구호는 명료하다. ‘진짜 음식을 먹으라(Eat Real Food)’. 초가공식품과 정제 탄수화물, 첨가당을 줄이고 단백질과 건강한 지방 과일 채소 통곡물을 식탁 중심에 두라는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이 지침이 학교와 군 급식, 아동 영양지원 프로그램 등 수십 개 연방 급식 정책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미 농무부(USDA)는 이미 학교급식 개편 작업에 착수했고, 새 규정은 2026학년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돼 2028학년도까지 확대 시행된다. 단순히 미국인의 입맛이 아니라 구매 구조 자체가 재편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재편의 한복판에 수산물이 있다. 새 지침은 수산물을 고품질 단백질이자 오메가3를 공급하는 건강한 지방의 원천으로 격상시켰다. 미국인은 주당 3회 이상 수산물 섭취를 권고받으며, 생후 6개월부터의 조기 섭취와 청소년기·임신·수유기 섭취의 중요성도 함께 명시됐다. 수산물이 ‘가끔 먹는 건강식’에서 영유아부터 노년까지 전 생애를 관통하는 필수 식품군으로 격상된 셈이다. 미국 수산업계가 즉각 환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 지침이 수산물을 선택지가 아니라 우선순위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우리 수산업이 이 변화를 남의 일로 봐선 안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 전문매체들은 이번 개정으로 정부 조달은 물론 리테일과 외식 시장의 수산물 구매가 크게 늘 것으로 내다본다. 미국 시장을 단순 소비시장이 아니라 정책이 수요를 밀어 올리는 구조적 성장시장으로 다시 봐야 하는 이유다.
기회의 신호는 이미 나타났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수산식품의 대미 수출은 상호관세 부과에도 9% 늘었고, 조미김을 중심으로 참치와 굴의 성장세도 뚜렷했다. 여기에 노르웨이의 대미 수출이 최근 눈에 띄게 줄었다는 통계는, 우리가 파고들 여백이 오히려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지금까지 K-수산의 대표선수가 김 한 품목에 지나치게 쏠려 있었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단백질과 오메가3라는 새 기준에 맞춰 참치와 굴, 냉동 수산식품, 간편식형 해산물 가공품까지 전선을 넓혀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K-푸드의 인기’가 아니라 ‘건강한 단백질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승부는 원물만으로 갈리지 않는다. 전미수산협회가 신선·냉동·통조림 등 모든 형태의 수산물이 건강한 식단에 기여한다고 평가한 점은 우리에게 분명한 호재다. 우리 수산업은 냉동과 상온, 소포장, 즉석조리, HMR 등 가공·유통 친화형 제품에 강점을 지녔다. 미국의 학교와 군, 대형 유통망이 원하는 포맷이 바로 이것이다. 필요한 것은 ‘좋은 생선이 있다’는 자랑이 아니라, ‘누구나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수산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증명이다.
결국 관건은 속도다. 칠레는 연어로, 에콰도르는 새우로 이미 미국 시장 확대에 발을 들였다. 한류와 맛에 기대어 머뭇거리는 사이, 이들은 ‘고단백’, ‘오메가3’, ‘아이도 먹기 쉬운 수산물’이라는 언어로 미국 소비자와 조달시장을 선점해 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재편이다. 김 중심 수출의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단백질 수산식품 확대, 공공조달형 제품 개발, 국제 인증과 영양표시 강화, 미국형 마케팅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 정부는 수출바우처와 인증 취득 지원을 넘어 미국 학교·군·공공기관 급식시장 진입을 위한 실질적 컨설팅과 매칭 프로그램을 서둘러야 한다. 기업은 미국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제품 규격과 의사소통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미국 식생활 지침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남은 질문은 하나다. K-수산이 그 변화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