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오며 수많은 예술과 문학 작품 속에서 끝없이 부활해 온 서사가 있다. 영웅들은 칼과 창을 들고 싸우고, 살아남은 인간은 배 한 척에 의지한 채 끝없는 바다를 떠돈다. 그런데 이 모든 인간의 싸움과 방랑에는 저 높은 곳의 신들이 끊임없이 개입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서사시 속에는 수많은 영웅과 신이 등장한다. 두 서사시는 시인이 뮤즈에게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청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를 ‘그리스 신화’ 이야기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호메로스가 자신의 서사시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신들이 아니다. 지극히 인간을 이야기하고 인간의 삶을 이야기한다. 가장 오래된 서양문학의 고전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근원적인 인간에 대해,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일리아스’는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 전체를 그리지 않는다. 전쟁 10년째 되던 해, 그리스 최고의 전사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그 분노가 몰고 온 비극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아가멤논과의 갈등으로 전투를 거부하던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대신 전장에 나선 절친 파트로클로스가 적장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분노한 아킬레우스가 복수를 위해 전투에 참전하고 결국 헥토르를 죽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은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모욕한다. 그러자 트로이의 왕이자 헥토르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가 목숨을 걸고 아킬레우스를 찾아온다. 그리고 이렇게 애원한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시오. 나와 동년배이며 슬픈 노령의 문턱에 접어든 그대 아버지를. 나는 세상 어떤 사람도 차마 못 할 짓을 하고 있지 않소. 내 자식들을 죽인 사람의 손에 입을 맞추고 있으니 말이오.”
강철 같던 아킬레우스가 무너진다. 늙은 프리아모스를 보며 자신의 아버지 펠레우스를 생각하고, 죽은 파트로클로스를 생각한다. 그렇게 둘은 적으로서도 아니고, 왕과 영웅으로서도 아닌, 아들을 잃은 아버지와 친구를 잃은 젊은이로서 함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정갈하게 수습해 아버지 프리아모스에게 돌려주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 전쟁을 멈춘다.
그렇다고 그들이 화해하거나 평화협정을 맺은 것은 아니다. ‘일리아스’는 헥토르의 장례와 함께 끝나지만, 트로이는 처참하게 멸망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짧은 순간, 적과 나를 가르던 경계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 그들을 하나로 만든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자신 역시 언젠가 죽어야 하는 필멸의 존재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타인의 고통과 죽음 앞에서 자신의 고통과 죽음을 볼 수 있기에 인간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함께 울 수 있는 존재다. 아니, 그런 존재여야 한다고 호메로스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10년의 트로이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케로 향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다고 삶의 전투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그의 귀향에는 다시 10년이 걸린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우리 삶의 우여곡절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수많은 위험과 난관, 유혹이 도처에서 그를 기다린다. 그 가운데서 가장 의미심장한 순간은 칼립소와의 만남일 것이다. 그를 사랑하게 된 여신 칼립소는 평온한 삶과 함께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꿀 법한 것을 제안한다. 바로 불멸이다. “만약 그대가 고향 땅에 닿기 전에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할 운명인지 안다면… 바로 이곳에 나와 함께 머무르며 이 집을 지키고 불사의 몸이 되고 싶어질 거예요.”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이렇게 답한다. “설혹 신들 중 어떤 분이 또다시 포도줏빛 바다 위에서 나를 난파시킨다 해도 가슴속에 고통을 참는 마음이 있기에 나는 참을 것이오. 이미 파도에서도, 전쟁터에서도 많은 것을 겪고 많은 고생을 했소. 그러니 이들 고난에 이번 고난이 추가될 테면 되라지요.” 그러니 누가 오디세우스를 말리겠는가. 결국, 그는 고통도 죽음도 없는 불멸의 삶을 마다하고 험난한 바다를 선택한다. 두 영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아킬레우스는 죽음이 기다림을 알면서도 전장으로 돌아가고, 오디세우스는 불멸의 유혹을 뒤로한 채 다시 거친 바다로 나간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처받고, 운명과 자연 앞에서 속수무책 무너지는 존재다. 그러나 ‘일리아스’의 인간은 죽음을 알기에 타인의 죽음 앞에서 함께 울고, ‘오디세이아’의 인간은 나약하고 수없이 좌절하면서도 다시 배에 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고향에 돌아와서도 계속되는 시련 앞에 가슴을 치며 스스로에게 말하는 오디세우스는 우리 자신이다. “참아라, 마음이여. 너는 전에… 이보다 험한 꼴을 보고도 참지 않았던가!” 거친 삶을 끝내 살아내는 우리는 모두 영웅이다. 필멸의 존재이기에 상처받고 무너지지만, 그래도 다시 배에 오른다. 그리고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