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냐 월세냐. 이제는 두 가지 선택지만으로 임대차시장의 문제를 풀기 어렵다. 임차인은 주거비 부담이 낮은 전세를 원하지만, 임대인은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월세를 선호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52%에서 올해 6월 68%까지 높아졌다. 문제는 급격한 월세화로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는 한편, 전세시장에는 여전히 전세금 미반환 위험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전세와 월세 중 하나를 택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임차인과 임대인의 미스매치를 조정하고 전세시장의 불안까지 해소할 새로운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임대차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 ‘전월세 안심신탁’(이하 ‘안심신탁’)이다. 안심신탁은 임차인과 임대인이 자율적으로 참여해 전세와 월세의 장점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설계한 새로운 개념이다. 임차인이 낸 전세금을 임대인이 아닌 전월세안정화기구가 관리하고, 전세금을 재원으로 펀드를 조성해 HUG가 보증하는 주택사업에 투자한다. 여기서 발생한 수익은 임대인에게 매월 지급한다. 전세금은 안전하게 지키고, 조성된 자금은 주택 공급에 활용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임차인에게는 전세금의 안전한 관리(Safe), 임대인에게는 안정적인 수익(Stable), 주택 시장에는 공급(Supply)이라는 ‘3S’를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첫째, 임차인에게는 ‘전세사기 걱정 없는 안전한 전세(Safe)’를 제공한다. 전세보증이 사고가 발생한 뒤 보증금을 대신 돌려주는 사후 구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안심신탁은 공적 기구가 처음부터 전세금을 직접 관리해 미반환 위험을 구조적으로 차단한다. 가입 단계에서 전세가격의 적정성과 위반건축물 여부 등을 확인해 위험 요인을 사전에 걸러내고, 계약이 끝나면 전세금을 임차인에게 직접 반환한다. 사고가 난 뒤 피해를 보전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고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주거비 부담도 낮출 수 있다. 월세·반전세 등으로 공급되던 주택이 안전한 전세로 전환된다면 임차인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거주하면서 목돈을 모을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서울 다세대주택 전세금 2억 원을 기준으로, 기존 월세로 거주할 경우 월 74만원을 부담하지만 안심신탁을 활용하면 대출이자 월 53만원만 부담하면 돼 매달 20만원 이상을 아낄 수 있다. 여기에 전세보증료 부담도 없어 절감한 비용을 저축과 자산 형성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임차인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둘째, 임대인에게는 ‘공실과 연체 걱정 없는 안정적인 수익(Stable)’을 제공한다. 임대인은 전세금을 직접 운용하는 대신 안심신탁을 통해 매월 일정한 수익을 받고, 임대료 연체 위험도 없다. 임차인이 바뀌면서 공실이 발생하더라도 최대 2개월간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 임대사업자는 임대보증 가입 의무가 면제돼 보증료 부담도 덜 수 있다. 전세를 놓으면서도 월세와 유사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셋째, 안심신탁의 효과는 개별 임대차계약을 넘어 주택공급(Supply)으로 이어진다. 예치된 전세금을 재원으로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HUG가 보증하는 주택사업 등에 투자한다. 초기에는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건설사의 PF사업에 자금을 공급해 주택 건설을 뒷받침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건설·매입임대 등으로 투자 범위를 넓혀 공공임대주택 공급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전세금을 단순히 보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주택을 공급하는 자금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전세금의 흐름이 달라진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동안 임대인이 직접 보유한 전세금은 추가 주택 매입 등에 사용되면서 갭투자의 재원이 되기도 했다. 안심신탁에서는 전세금이 공적 관리체계 안에서 관리돼 추가 주택 매입을 위한 갭투자 재원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신규 주택공급을 위한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할 수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갭투자 수요를 줄이고, 공급 측면에서는 주택 건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여기에 안전한 전세주택이 늘어나면 급격한 월세 전환 속도를 완화해 임대차시장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결국 안심신탁은 임차인의 전세금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서 출발하지만, 전세금의 역할 자체를 바꾸는 시도이기도 하다.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고, 임대인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며, 모인 자금은 다시 주택 공급으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 앞으로 HUG는 안심신탁을 국민이 믿고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임대차 모델로 정착시키고, 전월세안정화기구로서 임대차시장 안정과 주택 공급 확대를 뒷받침해 나갈 것이다. 나아가 주택 공급과 주거금융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국민의 주거 안정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공공 플랫폼기관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