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15일, 국제신문이 주최하는 마라톤대회에 하프 마라톤을 신청했다. 신청 접수가 10분 만에 마감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마라톤을 뛰는 것보다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을 실감했다. 개인적으로 마라톤에 입문한 지 올해로 26년째다. 나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함께 마라톤을 시작한 오랜 친구의 이야기에 따르면 시작은 2001년이었다. 어느 날 저녁 9시 뉴스를 보며 맥주를 한잔하고 있는데, 이봉주 선수가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소식을 시청하면서 술김에 둘이 의기투합해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온천천에서 뛰는 사람을 보면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달리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제는 ‘마라톤 붐’이라는 것을 체감한다.
온천천을 달리다 보면 뛰는 사람, 걷는 사람, 춤추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거리공연을 하는 사람, 농구를 하는 청소년들,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이 온천천을 자신의 공간처럼 이용하는 것을 느낀다. 기초자치단체에서도 크고 작은 행사를 많이 개최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생각이 늘 머리에 맴돈다. ‘온천천에서 책 관련 행사를 열면 얼마나 좋을까?’ 부산 곳곳에서는 이미 다양한 독서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수영구에서는 10월에 ‘광안리 해변도서전’을 개최하고, 사하구는 다대포 해변공원에서 ‘부산바다도서관’ 하반기 행사를 개최한다. 북구에서는 9월 12, 13일 만덕도서관과 백양근린공원 일원에서 ‘낙동독서대전’을 열고, 중구에서는 보수동책방골목을 중심으로 야외 독서 축제를 개최한다. 9월과 10월이 되면 여러 자치구에서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독서문화 행사가 이어진다.
온천천은 어떨까? 온천천은 금정구 동래구 연제구 3개의 구를 잇는 공간이다. 나는 온천천에서 ‘온천천 도서전’을 열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 도서전을 기반으로 특정한 행사 기간에만 책을 만나는 도서전이 아니라, 도심의 일상에서 주민이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고 읽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온천천은 그런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잔디밭이 있고 앉을 수 있는 계단과 벤치도 있다. 봄과 가을이면 돗자리를 펴고 책을 읽거나 독서 모임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온천천에서 북토크를 열고, 작가를 초청해 이야기를 듣고, 시민이 삼삼오오 모여 책을 주제로 토론하고 자기 생각을 나누는 열린 광장처럼 만들면 좋겠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온천천 어디에서나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을 만들어 보자. 온천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야외 도서관’이 되는 것이다.
AI 시대를 살아가면서 책 읽기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클릭 한 번이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답을 손쉽게 받아낼 수 있다. 하지만 편리함의 이면에는 ‘사고의 외주화’라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내 생각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보다 누군가가 정리해준 생각과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시대다.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책을 읽어야 하고 읽는 것에 소중함과 중요함을 알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책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수단이 아니다. 한 문장을 읽고 멈춰 생각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만나면서 자기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나는 온천천의 큰 나무가 있는 벤치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드러누워서 종종 책을 읽곤 했다. 그래서 온천천에서 책을 들고 걷는 사람을 상상해 본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책을 읽는 사람, 친구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작가와 시민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상상한다. 봄과 가을이면 곳곳에서 작은 독서 모임이 열리고,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책을 읽는 풍경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 책 읽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온천천은 단순히 운동하고 산책하는 공간을 넘어, 시민이 생각하고 만나고 대화하는 열린 문화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