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 그대로 뚜벅이다. 게을러서 운전면허를 따지 못했기로, 웬만한 길은 걸어 다니고 먼 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간혹 큰 짐을 옮기거나 훌쩍 여행을 가고 싶을 때 답답하고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큰 불편은 못 느끼고 살았다. 한국은 교통망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인 데다 어느 계절이라도 어디든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의 날씨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여름은 무척 불편하다. 예년 같으면 비록 땀은 좀 흘리더라도 마실 삼아 운동 삼아 슬렁슬렁 걸어 다녔을 정도의 거리도 버스를 타지 않고는 도저히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흔 살의 엄마도 살면서 처음 겪는 무더위가 한반도를, 아니 이 지구 전체를 덮쳤다.
근 한 달도 넘게 아침 산책을 못 나갔다. 더워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 밤 산책은 나갔는가? 역시 못 나갔다. 사정이 이러니 기실 나는 ‘아침숲길’을 쓸 자격이 없는 셈이다. 아침 산책은 고사하고 밤 산책도 나설 수 없는 ‘실내 인간’이 ‘아침숲길’이라는 카테고리의 칼럼을 쓰는 모순, 아이러니에 빠져버렸다.
나는 최근에 ‘내가 꼭, 굳이 시를 써야 하나, 글을 써야 하나, 노래를 불러야 하나’ 하는 따위의 회의적인 생각을 부쩍 많이 한다.
과장해서 말하면, 아니 이제 과장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지만, 열불이 나서(쪄) 죽을 텐데 그럴듯한, 혹은 미래를 전제한 시와 글과 이야기와 노래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일까 하는 극단적인 상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과 경제계가 한목소리로 떠들고 있는 3대 메가프로젝트(호남권 AI 데이터센터)를 바라보는 내 시각 역시 이와 유사하다. 미래 기술을 선점하고, 미래산업의 토대를 구축해서 경제적으로 성장, 발전하면 누가 (잘 사는 건 바라지도 않고) 살게 되는 걸까? AI 데이터센터가 내뿜을 열기는 무엇이, 누가 막아주는 걸까?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할지도 모르는 AI데이터센터(인공지능)는 이 폭염을, 남극과 북극과 히말라야와 그린란드와 시베리아와 안데스의 녹아내리는 빙하를 막아내는 해법을 제시할 것인가? 한여름 한반도 상공을 덮은 이 무겁고 두꺼운 이중 이불(이중 고기압 돔)을 걷어낼 기술을 도출할 것인가? 최대의 에너지를 쓰고 최대의 열기를 내뿜어내야만 가동될 이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은 과연 인류를 살리는 기술이 될 것인가?
나는 아직 이에 대한 해답과 방법을 어디에서도, 누구에게서도 듣지 못했다.
스마트폰을 들고 오늘의 날씨와 길찾기와 뉴스와 밥집 따위를 검색하고 유튜브 일본어 채널 따위에 접속하다 보면 손에서 열이 나기 시작한다. 이 오래된 구형의 작은 단말기도 에너지를 써야 작동하고 에너지를 쓴 만큼의 열을 내뿜는다. 인간 세상에만 거짓(속임수)이 있을 뿐, 자연과 대기, 지구와 이 작은 물건에는 거짓이 없다. 쓴 만큼 돌려줄 뿐이고, 인간이 한 만큼의 결과를 내놓을 뿐이다.
물론 나는 안다. 작금의 무더위(기후 이변)는 지구에겐 아무 일도 아니라는 걸, 다만 인류라는 한 종에게 닥친, 인류라는 한 종을 먹여 살리는 자연(생물종들)에게 닥친 위기일 뿐이라는 걸. 그리고 이 ‘자연’이라는 말 역시 인간종이 만든 배타적 단어일 뿐이라는 걸.
나는 요즘 이런 식의 기술허무주의, 과학허무주의, 인간종 허무주의에 휩싸여 있다. 인류는 현상적으로는 ‘식인’ 문화를 경계하고 금지했지만, 사실 근원적, 무의식적, 그리고 망각적으로 ‘식인’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를 꽃피운 게 아닌가. 결국은 식인이 목적인, 자해가 목적인, 자살(인간종 절멸)이 목적인 문화를 일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휩싸여 있다.
아침숲길을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열로써 열을 ‘차단-유예(그 모든 냉각장치)’하는 우주 최초의 시도는 지금 대실패 직전에 있다. 인류의 두뇌(욕망)를 식히지 않는다면 언젠가 아침 숲길과 더불어 인간종이 맞을 아침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