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 ‘초품아’.
부동산 관련 기사나 아파트 분양 광고를 보면 흔히 접할 수 있는 용어다. 여기에 ‘탱크 데이’ 마케팅 논란으로 비난을 받았던 ‘스타벅스’가 생활권에 존재하는 ‘스세권’이란 용어도 한때 유행했다. 이 용어들은 집의 공간적 위치와 주변 생활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최근 지인 중 한 명이 이사를 했다. 그는 새로운 집을 구하면서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곳을 찾았다. 걸어서 15분 이내에 도서관과 수영장, 재래시장을 이용할 수 있는 곳. 그는 꽤 많은 발품을 팔았지만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집을 쉽게 발견하지 못했다. 마침내 어렵게 찾은 집은 계획된 예산을 초과했다. 그는 무리해서 집을 옮겼다. 이후 그는 은행의 대출 이자를 상쇄하고도 남는 만족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공간적 위치와 주변 환경은 집을 평가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가령 집 근처에 지하철역이 있어 이용하기 편하고, 자녀들이 안전하게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존재한다면 인기가 많을 것이다. 거기다 마트와 병원 등이 가깝고, 도서관과 공원, 문화시설이 곁에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런 집의 문제는 딱 하나다. 매우 비싸다.
이제 관점을 다르게 생각해 보자. 대중교통, 학교, 생활편의·문화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을 개인이 힘겹게 찾거나, 발견했다고 해도 금전적인 대가를 치를 필요 없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한다면?
그 개념에 가장 가까운 정책을 꼽으라면 15분 도시를 들고 싶다. 15분 도시의 목표는 정부 주도로 각종 시설을 공간적으로 집적하거나 재배치해 시민이 편리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생활권을 형성하는 것이다. 15분 도시는 기후위기, 에너지 고갈 시대에도 적합하다.
국내에서 15분 도시는 부산이 선도했다. 박형준 전 부산시장이 1호 공약으로 15분 도시를 전면에 내세웠고, 2021년 비전 선포식도 가졌다. 지난해 12월에는 15분 도시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스텝 업 전략까지 발표했다.
선도한다는 건 시행착오를 각오해야 한다. 부산도 그랬다. 초창기 15분 도시를 위한 3대 전략 중 하나가 ‘15분 내 주거-문화-건강이 연결되는 생활권 조성’이었다. 문제는 15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였다. 애초 시는 도보, PM(개인용 이동수단), 대중교통을 이용해 15분 안에 생활편의 시설과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부산형 15분 도시’ 모델을 만든다고 했다. 정책 입안자가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정책은 산으로 간다. 시는 15분 도시 의미와 맞지 않다는 지적에 따라 대중교통을 제외했다.
‘부산형 15분 도시’ 중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다.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과 55~74세 신노년 커뮤니티 공간 ‘하하센터’다. 시가 대대적으로 홍보해 15분 도시의 대표적인 사업처럼 인식된다.
그런데 왜 어린이 복합문화공간이 15분 도시의 간판처럼 부각되는지 곰곰이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상한 건 들락날락과 하하센터처럼 굳이 나이를 구분해 시설을 조성할 필요가 있는지 갸우뚱하게 된다. 가뜩이나 인구 감소가 최대 고민인 도시에서 나이로 시설을 나누는 것이 효율적인지 의문이다.
이미 101곳의 들락날락이 문을 열었고, 9곳이 조성 중이다. 전임 박 시장의 15분 도시 유산으로 110곳의 들락날락이 남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민선 9기 전재수 시정에서 들락날락과 하하센터는 그대로 존재할까.
시는 지난달 ‘15분 도시’ 업무 부서인 ‘15분 도시과’를 ‘생활권 공간계획과’로 변경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시는 “15분 도시 정책은 도시공간계획실 내 생활권 공간계획과로 계승·확대해 시민체감형 공간정책으로 발전시킨다”고 밝혔다. 이름은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15분 도시란 이름은 직관적으로 정책의 지향점을 드러낸다. 반면 생활권 공간계획과는 추상적이다. 단번에 와 닿지 않는다.
부산의 움직임은 다른 시도와 대비된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첫 도정 연설에서 역세권 중심 15분 생활권을 제시했다. 추경호 대구시장은 취임사에서 15분 생활권 안에서 문화·예술·체육 인프라를 누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이 깃발을 올린 15분 도시에 다른 광역단체가 모이고 있다. 거기에 오히려 부산이 슬그머니 빠지는 느낌이다.
부산은 15분 도시를 선도했지만 완성하지 못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보완해야 할지도 정확하게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추상적인 생활권 공간계획과로 바뀐다면 15분 도시는 부산에서 미완성인 채로 멈출 수 있다. 들락날락과 하하센터만 남긴 채. 아울러 부산 시민은 진정한 15분 도시를 체감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김희국 디지털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