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을까? 대개는 주도권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갑작스러운 불안과 숨 막힘을 동반하는 공황발작도 고속도로나 고가도로, 비행기나 기차 등 인파가 많은 밀폐된 공간에서 흔히 경험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마음대로 그곳을 벗어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누군가 내 경계를 침범했는데 그 상황을 스스로 피하거나 바꿀 수 없다고 느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같은 상황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스트레스의 강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몸의 스트레스 반응은 뇌가 상황에 대해 어떻게 신호를 보내느냐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비행기를 탔을 때의 일이다. 외부 일정을 소화하고 늦은 저녁 비행기를 타서 무척 피곤했는데 앞자리 승객이 좌석을 지나치게 뒤로 젖히는 것이 아닌가. ‘피곤한 일정이 있었겠지’라고 이해하려 했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생각이 자꾸 올라왔다. 식사 시간이 됐음에도 좌석을 세울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 승객에게 승무원은 여러 차례 좌석을 세워줄 것을 요청했고, 나는 내심 승무원이 고마우면서도 여전히 반복해서 좌석을 젖히는 앞 승객에게 점점 짜증이 났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해서 내릴 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승객이 승무원에게 좌석이 고장이 나서 아무런 조작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좌석이 젖혀진다고 하소연을 하는 것이 아닌가. 승무원이 직접 앉아서 확인해보니 정말 좌석에 문제가 있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이기적으로 좌석을 젖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공간을 침해받는다고 느꼈을 때는 화가났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고 나니 그 사람 입장에서는 무척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결에 내 두뇌에서는 앞사람이 ‘나를’ 배려하지 않아서 좌석을 뒤로 젖히고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편함과 짜증이라는 감정이 나타났던 것이다. 확실치 않는 지레짐작을 하는 바람에 앞 승객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불쾌감을 느끼고 짜증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예로 응급실에서 치료받는 환자들의 통증강도를 들 수 있다. 교통사고로 응급실에서 치료받는 환자와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하고 응급실로 이송된 환자 중 누가 더 통증을 심하게 느낄까? 비슷한 정도의 부상이라고 가정할 때 전쟁터에서 이송된 환자가 오히려 통증을 덜 느낀다고 한다. 전쟁터에서의 부상은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병원 응급실로 왔다는 것은 안전한 곳으로 탈출했다는 신호이기도 하고 이제 안심하고 치료에만 전념하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고 싸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희망이 생기고 그 희망과 기대는 통증을 완화시킨다. 반면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 입장에서는 기본적인 일상의 리듬이 깨진 상태이다. 계획했던 일상은 사라졌고 갑작스런 부상으로 예기지 않게 응급실을 방문했다. 내 주도권을 잃었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고 불안과 분노가 몰려와 통증이 더 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평소에는 자유롭게 걷는 일이 너무 당연해서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아기를 데리고 유모차를 밀거나 다리를 다쳐 목발을 했다고 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계단 없이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얼마나 드문지, 승강기와 완만한 경사로가 얼마나 소중한지 비로소 알게 된다. 익숙했던 도시의 풍경이 나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일상의 변수가 우리에게 큰 스트레스가 될 때 생각의 틀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어떨까. 상황은 같아도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몸과 마음의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가 스트레스를 줄이는 첫걸음이 된다. 괜한 짜증과 화가 밀려온다면 현재의 순간에 집중해 보자.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감사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보는 것이다. 만약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신문을 읽는 지금 이 순간, 몰입해보자. ‘나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시력과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뇌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며 아주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