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식의 범죄를 숨겨줄 수 있는가. 지금의 형법 제151조에는 그렇게 해도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되어있다. 범인과 일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범한 ‘범인은닉의 죄’에 대해 처벌상의 특례를 적용하는 것이다. 입법자들이 이런 법을 만든 근거는 무엇인가.
논어에 바로 이 문제를 거론한 대목이 있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고을에 정직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아비가 양을 훔치자 자식이 증언했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고을에서 정직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그와는 다르다. 아비는 자식을 숨겨주고 자식은 아비를 숨겨준다. 정직함이란 바로 그렇게 하는 행위 속에 있는 것이다’(孔子曰吾黨之直者는 異於是하니 父爲子隱하며 子爲父隱하나니 直在其中矣니라).”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이 문장에 대해 ‘天倫(천륜)’과 ‘법(法)’이 충돌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情)은 천륜이고 법을 지키는 것은 직(直)인데 천륜이 직에 우선한다고 했다. 부모 자식 사이에서, 부모는 자식이 죄가 있을 때 꾸짖고 자식은 부모에게 잘못이 있을 때 간곡하게 지적하지만 서로 허물을 숨겨주는 것이 사람의 본성과 이치에 맞는다고 여겼다. 그렇다고 해서 죄인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인정상 외면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으므로 범인이 숨은 장소나 그 행적에 대해 침묵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대응은 인정된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형법 제155조를 보면, 타인의 형사사건에 대한 ‘증거인멸의 죄’에 대해 처벌하지 않는 특례를 인정하는 대상을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라고 비교적 넓게 규정하고 있다.
맹자에도 이런 이슈를 다룬 대목이 있다. 동양고전에서 최고의 효자로 인용되는 인물인데, 그의 타고난 지성과 성실함에 더하여 대효(大孝)를 인정받아 천자가 된 순(舜)임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다. 순을 죽이려고 했던 그의 아버지 고수(瞽瞍)와 순의 이복동생 상(象)의 패륜 행위는 맹자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순은 이들이 아무리 자신을 해치려고 해도 지극한 효성으로 아버지를 섬겼고 끝까지 동생을 용서하고 포용했다. 순임금에게 어떤 경우에도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동생은 동생이라는 생각이 분명했다. 맹자의 제자는 이런 순임금은 만약 그의 부친이 살인자가 된다면 어떻게 처신할 것이냐고 가설적인 상황을 설정해서 질문했다. 맹자에 나오는 그 대화를 인용해본다.
“도응이 질문했다. ‘순이 천자가 되고 (강직한 신하) 고요(皐陶)가 법 집행을 맡은 관리가 되었는데, 고수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될까요’. 맹자가 말했다. ‘고요는 그를 체포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순이 막지 않을까요’. 맹자가 말했다. ‘어찌 순이 (천자라고 해서) 막을 수 있겠는가. 고요는 범인을 잡을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이다. 법에 따라 마땅히 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순은 어떻게 할까요’. 맹자가 말했다. ‘순은 천하를 버리는 것을 마치 헌 짚신 버리듯 여기면서 (고수를) 업고 몰래 도망가서 먼 바닷가에 숨어 살며 평생토록 편한 마음으로 천하를 잊었을 것이다’.”
이렇게 순은 살인자 아버지를 업고 달아나고 순의 신하인 고요는 범인이 그의 상관인 천자의 아버지라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법대로 처벌하기 위해 도망자들을 추격하는 장면을 독자들은 상상하면서 맹자가 말하고자 했던 천륜과 법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공자와 맹자에게 천륜과 법의 충돌 문제는, 순이 아버지를 숨겨주면서 천자의 자리를 즉시 버린 것처럼, 공직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직자에게는 모두를 위해 공평하게 공적인 직무를 수행하라고 주권자가 믿고 맡긴 권한과 권력이 있다. 그는 그것을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을 위해 사적인 목적으로 쓸 수는 없다. 공인(公人)이 되어 법을 수호하기로 서약한 이상, 그는 공공의 영역에서는 가족을 잊어야 하며, 동료와의 친분과 의리를 모두 버려야 하는, 그래서 정책 결정과 법 집행 과정에서는 언제나 고독할 수밖에 없는 그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주역 동인(同人)괘 괘사(卦辭)는 특히 공직자에게 필요한 문장이다. “전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광야(廣野)로 나아가면 형통할 것이다(同人于野면 亨하리라).” 광야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친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없는 곳인데, 여기서는 자기 자신과 가족이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뒤로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세를 가지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정이천(程伊川)도 이에 대해 “사적인 관계나 이익에 얽히지 않고 지극히 공적인 마음으로 모두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도(道)”라고 해설했다. 국민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공직자는 이렇게 주역에서 말하는 그 거친 광야로 나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