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광복절에는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있는 국립강제동원역사관을 다녀왔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실상을 알리고 피해자와 유족을 위로·추모하는 공간으로, 2015년 개관해 올해로 11년이 됐다. 광복절 당일이라 특별 이벤트도 진행돼 역사관은 활기를 띠었다.
4층 입구로 들어가면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큰 전시물임을 실감케 한다. 아주 높은 천장의, 어두컴컴한 콘크리트 벽면 저 위에 겨우 난 몇 개의 조그마한 창문은 관람객이 거대한 배에 승선했다는 느낌을 준다. 배를 타고 타국으로 끌려가는 당시로 역사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항은 국외 강제동원의 출발지였다. ‘국민노무수첩’이 여권처럼 쌓인 입구를 지나면 징용고지서나 징용자명부 등 사료를 통해 강제동원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가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중일전쟁이 장기화하자 일제는 1938년 제정한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조선인 강제동원을 노골화했다. 군인, 군수공장·광산 노동자, 일본군 성노예 등으로 국내외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연인원 기준 780만 명이나 된다. 부당한 동원에 반대한 저항 움직임 , 해방 후 고국행 귀환선을 탔다가 배가 폭파돼 강제동원 노동자 수천 명이 희생된 사건(우키시마호 폭침), 사할린에서 펼쳐진 동포 귀환 노력 등도 상세히 다룬다. 열악한 강제노동 현장, 위안소 등을 모형으로 재현한 5층 전시실은 공분을 일으킨다. 아쉬웠던 6층 상설전시나 특별·기획전시가 보강돼 관람객이 여러 번 방문하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역사관을 나왔다.
‘빛을 되찾은 날’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은 여기 말고도 부산에 여럿 있다. 그중 우장춘기념관(동래구 온천동)이 요즘 주목받는다. 한 배우가 ‘4대째 의사 명문가’를 자랑하다가 증조부의 친일행적이 드러나면서 시끄러운데, 우 박사는 친일 조상을 둔 후손으로서 정반대 행보를 걸었기 때문이다. 부산을 대표하는 과학자이자 ‘한국 농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우장춘(1898~1959) 박사의 부친은 을미사변에 가담한 ‘민족 반역자’ 우범선이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원죄’를 씻고자 1950년 귀국, 부산에서 활동하며 배추 무 같은 채소 종자 국산화에 성공하는 등 우리나라 농산물 자급 기반을 다지고 과학 발전을 이끄는 데 남은 생을 바쳤다. 임종 직전 정부 문화포장을 받자 그는 “조국이 나를 인정했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우 박사처럼 헌신적 삶을 살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부끄러워는 하라는 게 이번 친일 후손 논란을 보는 국민의 보편적 시선이 아닐까.
이선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