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사회에서 논쟁은 언제나 바람직하다.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 논쟁도 마찬가지, 치열한 논쟁으로 제도를 개선·보완하는 것이야 말로 민주주의 시스템이 정상 가동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갑다. 하지만 법조를 오래 출입한 기자로서 검찰을 절대선, 경찰을 절대악으로 규정한 채 검사의 보완수사권 존치를 요구하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 경찰 수사는 반드시 통제를 받아야 하지만 검찰만이 경찰을 통제할 수 있고, 통제해야 한다는 발상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먼저 밝힌다.
‘검찰 신도’들이 보완수사권 유지를 주장하는 기저에는 검사는 선량하면서도 오류가 없는 신격화 대상이라는 인식이 있다. 명문대를 나와 사법시험을 통과한 ‘위대한 검사님’이 정의의 사도일 것이라는 환상과 함께 보수 정당의 오랜 정치적 파트너를 외면할 수 없다는 정치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맹신도’들의 열광적 지지에 검사들은 ‘나에게 잘못은 있을 수 없다’는 주술에 사로잡혔다. 없으면 털어서, 그래도 안 되면 부르고 또 불러서 괴롭힐 수 있는 괴물 집단으로 변질되면서 수사와 기소로 개인의 일평생을 짓밟고도 무죄가 선고되면 반성과 사과는 추호도 없는 집단이었다. 자신들을 향한 문제제기에는 본질보다 절차 등 곁가지의 흠을 문제 삼아 빠져나가는 현란한 법기술만 부렸다. 물론 상당수의 검사들은 공익의 수호자라는 본분을 다하기 위해 불철주야 범죄 척결에 앞장섰던 점 오롯이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줌도 안 되는 정치검사들의 칼춤에 검찰 조직이 침묵하고 동조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집단이 과연 권력이 아닌 공익의 수호자였나. 검찰의 지난 역사가 답할 것이다.
법정 풍경을 덧붙인다. 검찰이 공소제기를 할 때 기계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범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되도록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 기획수사(특별수사)나 거물급 인사의 사건이 아닌 일반적인 사건의 공소유지는 공판 검사의 몫이다. 일반 사건에서 수사와 기소를 한 검사가 공소 유지에 나서는 일 자체가 법조계에서는 뉴스다. 사건의 실체 파악은커녕 다른 피고인의 수사 기록을 언급한 것도 모자라 결심공판인 양 착각한 채 구형까지 하려다가 재판부에 제지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나마 1심은 낫다. 항소심에서는 한직으로 밀려난 고참, 고검 검사가 공판검사의 역할을 하니 피고인이나 재판장 한 번 쳐다보지 않고 서류에만 시선을 둔 채 공판카드를 주절주절 독백 수준으로 읊는다.
젊은 검사들 사이에서 “보완수사권이 있으면 일이 많아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상황,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의 견제를 받는 경찰 수사와는 달리 검찰의 보완수사는 그 자체가 최종 수사이기에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영역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치부장이 또다시 검찰을 주제로 글을 쓰는 이유는 ‘검사 DNA’를 재강조하고 싶어서다. 본디 검사는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적 본능이 강하지만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직 지나간 사건을 놓고 승패와 시비를 가리기 위해 과거에서 답을 찾는 직업군이기 때문이다.
특히 무오류의 존재로 스스로를 신격화한 집단에게 정치의 본질인 대화와 타협은 반성과 사과 만큼이나 낯설다.
문제는 검사 DNA가 정치적 동지 관계인 보수 정당에 너무나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검찰청 외 사회 경험이 전무한 인사가 졸부처럼 권력을 잡았을 때의 비극을 혹독하게 경험했다. 잘못을 시원하게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됐을 일을, 이말저말 둘러대면서 스무고개식 대응을 일삼는 기술을 부리다가 변두리를 전전하는 정치인도 있다. 자신을 향한 비판에는 찰나의 속도로 달려드는 검사 본능, 호전성도 유감 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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