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좋던 4월의 어느 날, 내 일상에 작은 사고가 하나 났다. 불륜도 아니고, 교통사고도 아니고, 심장마비도 아니었다. 주식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습관처럼 유튜브를 몇 개 클릭하는데 ‘산일전기, 지금이 기회!’라는 영상이 떴다. 평소 같으면 넘겼을 텐데, 그날은 호기심에 눌렀다. 영상을 보고 나니 ‘나 빼고 다 하는 주식,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카카오톡 앱에 증권 플랫폼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바로 들어가서 생애 처음 매수 버튼을 눌렀다. 그날로 나는 ‘개미’가 되었다.
그날 산 주식 50만 원이 이틀 만에 68만 원이 됐다. 주식, 이거 쉽네! 18만 원을 번 것뿐인데, 1억을 번 것만큼이나 자신감이 차올랐다. 마침 그날이 독서모임을 하는 날이라 주식으로 돈 번 거 자랑하면서 뒤풀이 커피도 샀다. 그 뒤로 삼성전자도 사고, SK하이닉스도 사고, 이것저것 종목을 늘려 갔다. 딱 1000만 원만 가지고 놀이 삼아 하자고 마음먹었는데, 주식 유튜버들이 주목하라고 떠드는 종목을 사다 보니 투자금이 자꾸 불어났다. 내가 왜 진작 주식을 안 했을까, 후회할 정도로 주식 창이 계속 빨간색이었다. 수익이 700만 원을 넘겼을 때는 ‘이게 무슨 일이고’ 싶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증권 앱부터 열었다. 올랐나 내렸나. 올랐으면 얼마나 올랐고, 내렸으면 얼마나 내렸나. 수시로 체크했다. 글 한 줄 쓰고 앱 열고, 자료 찾다가 앱 열고, 밥 먹으면서는 앱을 아예 열어두었다. 내 일상의 낙이었던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심하면 들어가던 페이스북도 발을 끊다시피 했다. 산책하며 즐기던 풍경도 수시로 들여다보는 주식 창으로 대체됐다.
일상이 바뀌고 관심 영역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뉴스를 봐도 연예나 문화 쪽 기사만 훑고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올릴지, 환율이 왜 움직이는지, 반도체 업황이 어떤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전쟁이 왜 국내 증시에 영향을 주는지가 궁금해졌다. 미국의 금리가 내 계좌를 흔들고, 국제 유가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6월이 되자 수익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잠깐 조정이겠지, 하고 넘겼는데 계좌는 얄짤없이 제 갈 길을 갔다. 700만 원이 넘던 수익은 조금씩 내려앉다가 결국 본전이 됐다. 이쯤 되면 팔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가락은 매수 아닌 매도 버튼 위에서 맴돌았다. 이건 대장주니까 사놓으면 오르겠지. 기업의 펀더멘털이 그렇게나 좋다잖아. 욕심에 눈멀어 떨어진 주식을 더 담다 보니 투자금이 금세 3000만 원을 넘겼다. 내가 미쳤지, 하면서도 마음 한편엔 조금만 더 버티면 다시 오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7월, 계좌는 완전히 주저앉았다. 연일 곤두박질치면서 파랗게 질려있는 주식 창을 들여다보다가 내가 어떤 인간인지 깨닫는 득도의 순간이 왔다. 자다가 깨는 횟수가 늘었고 실없이 웃는 순간이 많아졌다. 증권 앱은 아예 열지도 않았고, ‘개미’라는 단어가 보이면 소리 없는 비명이 흘러나왔다. 개미는 똑똑하고 부지런한 곤충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주식판에서 개미는,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큰손들 발밑에 깔리는 존재였다. 분명히 ‘오른다’고 하는 것만 샀는데 ‘진짜 이게 무슨 일이고’ 싶었다.
안다. 억울해할 자격도 없다는 거. 나는 산일전기가 뭘 만드는 회사인지도 모르고 샀다. ‘지금이 기회’라는 영상 제목만 보고 샀고, 누가 얼마 벌었다는 말에 혹해서 샀다. 나는 투자를 한 게 아니라, 숫자가 깜빡이는 게임기 앞에 앉아 있었던 거다. 손실은 당연한 거였다. 공부 안 하고 시험을 치고는 왜 점수가 안 나오냐고 따지는 꼴이었으니까.
비싼 수업료 내고 배웠다. 주식 투자는 오르내리는 숫자를 맞히는 도박이 아니라, 어떤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고 그 미래에 내 돈을 얹는 일이라는 것. 그 회사가 반도체를 만들든 라면을 끓이든 그 가치를 확신할 때 매수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것. 그래서 결심했다. 증권 앱을 다시 열고, 제 발로 걸어 다니는 개미가 되기로. 며칠 전부터 코스피가 반등 조짐을 보여서 하는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