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울산 울주군 상북면이다. 지금은 부산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걸리는 가까운 곳이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만 해도 이리 봐도 산이고 저리 봐도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 중의 오지였다. 고향의 앞뒤로는 가지산(1241m), 신불산(1159m), 영축산(1081m) 등 1000m급 고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흔히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이곳은 신라 시대 화랑들이 심신을 수련하던 호연지기의 장이기도 했다.
갑자기 고향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최근 온병원그룹에서 울주군립 울주병원을 위탁받아 운영하게 되면서 울주군청을 방문했는데, 복도에 걸린 울주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화랑들이 활을 쏘던 천전리 각석, 늠름하던 그 기상 솟아 나오고’라는 구절을 보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어린 시절 시골 초등학교의 운동회나 학예회는 지역 주민 전체가 모이는 큰 축제였다. 초등학교 5학년 학예회 때 화랑 관창과 계백 장군, 품일 장군, 김유신 장군 등이 등장하는 역사 연극을 했는데, 당시 내가 김유신 장군 역할을 맡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관창의 희생에 깊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비록 당시엔 화랑도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었지만 말이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남긴 것으로 알려진 명언 중 “그 나라의 청소년을 보여다오. 그러면 그 나라의 미래를 점쳐주마”라는 말이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천년 왕조를 지탱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바로 청소년 호국 조직이었던 ‘화랑도 정신’이 크게 기여했다고 확신한다.
화랑도는 본래 촌락 단위 청소년 조직인 ‘원화(源花)’에서 출발했다. 원화는 공동체 내에서 예절과 무술을 익히며 사회성을 키우던 민간 조직이었다. 이를 진흥왕이 국가 주도의 인재 양성 필요성을 인식하고, 약 1470년 전 국가적 조직으로 확대 개편한 것이 바로 ‘화랑도’다. 화랑들은 무예뿐만 아니라 예절 학문 음악 도덕을 함께 배우며 인격 수양과 국가 봉사를 목표로 한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화랑도의 정신적 기반은 유·불·선(유교·불교·도교) 사상이 융합된 세속오계(世俗五戒)에 뿌리를 두고 있다. 화랑들은 ‘사군이충(事君以忠)’을 통해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무한한 헌신을 배웠고, ‘사친이효(事親以孝)’를 바탕으로 가정을 지키는 인간 기본 윤리를 가슴에 새겼다. 또한 ‘교우이신(交友以信)’으로 공동체 안에서 신뢰와 의리를 쌓았으며, ‘임전무퇴(臨戰無退)’의 각오로 무인으로서의 용기와 책임감을 키웠다. ‘살생유택(殺生有擇)’의 가르침을 통해 불필요한 살생을 삼가고 생명을 존중하는 정당한 무력 사용의 도리를 깨우쳤다.
실제 교육 방법 역시 매우 현대적이고 체계적이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화랑도의 실천적 교육 방식을 ‘유오산수 무원부지(遊娛山水 無遠不至)’ ‘상마이도의(相摩以道義)’ ‘상열이가락(相悅以歌樂)’으로 기록하고 있다.
단순히 해석하면 ‘산수를 유람하며 아무리 먼 곳이라도 가지 않은 곳이 없었고, 도의를 서로 갈고닦으며, 노래와 음악으로 서로 즐거워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깊은 교육적 철학이 담겨 있다. 전국의 명산대천을 누비는 ‘유오산수’는 호연지기와 강인한 체력을 키우는 자연 속 인성교육이자 국토 순례였으며, 숫돌에 칼을 갈듯 서로를 연마하는 ‘상마이도의’는 공동체 안에서 인격을 함께 도야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또한 시와 노래와 춤을 즐기는 ‘상열이가락’은 공자가 강조한 예악(禮樂) 교육처럼 예술을 통해 정서를 한층 바르고 풍요롭게 함양하는 길이었다.
이처럼 화랑도는 세속오계라는 확고한 가치관 위에서 ‘자연 체험→인격 연마→정서 함양→국가와 사회에 대한 헌신’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전인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신라는 이러한 위대한 정신적 자산을 바탕으로 삼국통일과 천년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지적 능력에만 치우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의식이 아쉬운 오늘날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공동체와 국가를 먼저 생각했던 화랑도 정신이야말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금 본받아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