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해사국제상사법원 설립에 대비해 부산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짚었다. 2028년 부산해사국제상사법원 개원을 앞두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서울의 대형 로펌들이 부산 지사 설립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지역 법조계가 술렁인다는 이야기가 출연의 계기였다. 2025년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이 완료됐고, 아시아태평양해사중재센터는 이미 문을 열어 운영 중이다. 여기에 부산해사국제상사법원까지 개원하면 지난 25년간 줄기차게 외쳐온 ‘해양수도 부산’의 기본 틀이 비로소 갖춰지는 셈이다.
수도권에 흩어진 해운기업과 부대 서비스업, 관련 금융기업들이 부산에 모이면 하드웨어 측면의 해양수도는 실질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남은 3년은 하드웨어를 실제로 움직일 소프트웨어, 즉 사람과 서비스를 채워 넣는 시간이어야 한다.
주의할 점도 있다. 법원이 부산에 있어도 정작 사건을 다투는 변호사들이 KTX로 출퇴근하는 이른바 ‘출장 법조’에 그친다면, 간판만 부산이고 실질은 서울인 반쪽짜리 허브에 머물고 만다. 법원 유치는 목적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부울경 법조계와 정책 당국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해양수도의 틀은 국가와 부산시가 만들어줄 수 있어도, 그 성패는 결국 부산을 중심으로 한 해양산업의 실질적 활성화에 달려 있다. 이는 우수한 인재가 부산에 남고 외부에서도 유입되어 제대로 된 체제 속에서 활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싱가포르가 SICC(싱가포르국제상사법원)를 세우자 세계적 로펌들이 앞다투어 현지 사무소를 냈고, 그 주변으로 중재·금융·보험 전문인력이 함께 모여드는 생태계가 형성된 것도 같은 이치다. 런던상사법원과 로테르담의 해사중재 실무도 마찬가지로, 법원 하나가 아니라 그 법원을 둘러싼 인적 인프라가 완성될 때 비로소 국제분쟁 해결의 허브가 된다.
해사국제상사법원 설립을 앞두고 부울경 법조계가 다소 우려하는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지역 법조계가 국내외에서 경쟁력을 갖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해사법률서비스와 국제상사법무는 개인 간 분쟁보다 기업 간 분쟁을 다루는 비중이 훨씬 크고, 앞으로도 그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변호사 개인이 해사법과 국제상사법 역량을 충분히 갖추는 것은 물론, 전문 스태프와 역할분담이 이뤄지는 기업형 로펌이 들어와야 한다. 계약서 검토와 영문 서면 작성을 나눠 맡는 실무 체제가 갖춰져야 국제 사건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해운회사나 보험회사를 상대하는 전문변호사와 이들을 상대하는 변호사의 영역은 따로 있는 만큼, 어느 쪽으로 특화할지 진단하고 목표를 세운 뒤 역량강화와 인수합병을 통해 로펌을 전문화·대형화한다면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선박충돌, 해상보험, 용선계약, P&I 분쟁처럼 세부 분야별로 특화된 전문가 집단이 형성되어야 국제 사건 수임에서도 신뢰를 얻는다. 아울러 이 모든 것을 지탱할 인재를 길러내고 붙잡아 두는 일도 병행되어야 하며, 지역 대학의 해사법학 교육과 로스쿨의 실무연계 과정 역시 그 역할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재학 중 해사중재·해상보험 실무를 접할 기회를 넓히고, 졸업 후 지역 로펌과 해운기업에 정착할 통로를 만드는 일도 시급하다.
부울경 법조계는 그동안 해사법원 설립을 이끈 저력이 있다. 이제는 변화된 상황도 주체적으로 이끌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로펌의 전문화와 대형화 관련해 부산시도 이를 유인할 정책적 지원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로펌의 대형화에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나 국제 인증 취득 지원, 교육지원 등 작은 유인책이라도 지금 시작해야 3년 뒤 결실을 볼 수 있다. 해사법원의 개원 종이 울리기 전에 부산 법조계의 준비 종도 함께 울려야 한다.
지난 사반세기 해양수도 부산을 주장해 온 사람으로서 방송에서도 우려보다 준비를 강조했다. 법원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부산이 스스로 국제분쟁 해결의 중심으로 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는 곧 성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