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일들, 예컨대 학교에서 일어나는 악성 민원과 특정 지역 비하 발언 등을 보고 있자면 이 문제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막막하다. 어떤 사람이나 사건의 한 면만 보고서 판단하고, 평가하고, 단정하며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이 참으로 씁쓸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서로에게 상처 입히며 살아가고 있는가?
일본 철학자 지카우치 유타는 『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 입힐까』에서 이 원인을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이야기를 살아가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부분 공통된 삶의 길을 걸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각자 너무나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나에게 소중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일이 비일비재하다. 상대를 위해서 했다고 생각한 말이나 행동이 오히려 상처를 준 경험을 대부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하물며 내가 아끼고 위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는데, 그렇지 않은 타인에게는 어떠하겠는가. 우리는 스스로 악하고 상처 주는 사람이 되길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정한 사람’이 되길 원하지만, 그 다정함이 자꾸만 비껴가고 어긋나는 것이다.
지카우치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아주 간단한 원칙을 제시한다. ‘나와 당신은 서로 다른 존재다’를 인정하는 것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과 다른 사람의 소중한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단순히 해주고 싶은 마음, 베풀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이타심이 될 수 없다. 상대가 소중한 것을 나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타심이다.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배경은 어떠했는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은 무엇인지, 또 오늘 어떤 일을 겪었고 기분은 어떠한지, 평가하지 않고 시간을 들여 정성껏 보아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모든 것이 분초 단위로 일어나는 오늘날, 우리는 타인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짧은 영상들에 길들여진 우리의 뇌는, 모든 상황을 단편적으로, 평면적으로 보고 생각한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이야기’다. 타인의 삶을 이야기로 읽어내는 것만이 서로가 상처주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카우치는 책에서 한 상담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우등생이고 모범생이었던 한 중학생 여자 아이가 머리카락을 뜯는 습관 때문에 상담사를 찾아왔는데, 상담사는 그 버릇을 고치는 방법이 아니라 아이가 처한 상황을 살펴봤다. 그 결과, 아이는 엄마에게 사랑을 더 받고 싶었지만, 동생도 돌보고 일도 하는 엄마에게 짐이 되기 싫었고, 그 응석을 부리고 싶은 자신의 마음에 스스로 벌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알게 된 엄마는 아이와 며칠 함께 잠을 잤고, 거짓말처럼 그 버릇은 사라졌다.
상담사가 아이의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아이의 생각을 가감없이 들었듯,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하게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슬픔과 비통함을 겪은 사람의 상황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큰 슬픔에 빠졌다면 섣불리 위로하려고 하기보다 조용히 살펴보고 들어주고 지켜보아야 한다. 그런데 사회에 참사나 사고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얼마나 섣부르게 위로하였는가? 안타깝다, 애도한다, 위로한다, 그 말들은 진심이었을지 몰라도, 그렇게 간단한 말은 오히려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이들에게 크나큰 상처였을 것이다. 비통함에 빠진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그 삶 전체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또 안일하게 상대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던가.
지카우치는 나의 다정함이 상대에게 가닿는 방법으로 상대를 하나의 별로 보지 말고 별자리로 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의 삶이 지나온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다정함이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타인이 한 말 한마디에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오늘날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삶의 기술 아닐까. 그 말이 어떤 의미이고 맥락인지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읽어내려는 힘. 그것이 서로에게 상처 입히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나의 다정함이 부디 당신에게 가닿기를. 서로의 삶을 읽어내며 더 아름다운 별자리를 함께 그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