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정부가 ‘공공기관 기능개편 TF’를 통해 300개가 넘는 정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전국 4개 항만공사의 통합이 포함돼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부산을 비롯한 울산 여수·광양 인천 등 주요 항만도시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공기관 효율화라는 명분은 이해되지만 항만공사는 그런 논리로만 적용될 수 있는 공공기관과는 다르다. 국가 물류 경쟁력은 물론 지역경제와 국가균형발전을 동시에 견인하는 전략기관이다. 운영 효율성을 내세워 조직 통합의 논리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부산항은 세계 2위 환적항이자 대한민국 최대 무역항이며 북극항로 시대를 준비하는 글로벌 허브항만이다. 인천항은 수도권 관문항이자 대중국 교역의 중심이고, 울산항은 에너지·액체화물 중심 항만이다. 여수·광양항은 철강과 석유화학, 원자재 물류를 담당하는 국가 기간항만이다. 항만마다 기능과 역할, 배후산업과 발전전략이 다르다. 이러한 다양성과 전문성이 대한민국 항만 경쟁력의 원천이다. 이를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면 항만별 특화전략과 신속한 의사결정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투자 우선순위와 예산 배분, 조직 운영을 둘러싼 갈등도 커질 가능성이 크다. 규모를 키운다고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항만공사는 그 특성으로 인해 오히려 현장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훨씬 크다.
세계적으로도 주요 항만 운영이 중앙정부에 의해 단일화된 조직으로 운영되는 사례는 없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은 로테르담시가 대주주로 참여하며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독일 함부르크항 역시 함부르크시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유한공사’ 형태의 자율,전문 경영 체제를 갖추고 있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항과 롱비치항도 지방정부가 중심이 돼 각각 독립된 항만당국이 경쟁과 협력을 병행하며 항만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해양선진국들은 통합이 아니라 자율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더욱이 항만공사 통합은 국가 정책 방향과도 어긋난다는 점이다. 정부는 ‘5극 3특’ 국가균형발전 전략을 통해 수도권 일극체제를 극복하고 지역 주도의 성장거점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방분권 역시 지역이 스스로 발전전략을 세우고 책임지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지역의 핵심 성장기관인 항만공사를 중앙집권적 체제로 통합하는 것은 이러한 정책 기조와 모순된다. 개별지역 항만공사의 권한과 책임을 확대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중앙으로 권한을 집중하는 것은 거꾸로 가는 것이다.
특히 부산은 해양수산부 이전을 계기로 전환점을 맞고 있다. 해양행정과 해운기업, 항만, 해양금융, 해사법원, 연구·교육 기능을 집적해 대한민국 해양수도를 완성하는 것이 국정 과제이다. HMM 이전과 해양수산 공공기관 추가 이전, 부산해사국제상사법원 설치, 동남권투자공사 설치, 북극항로 거점 조성 등 핵심 과제들이 이런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부산항만공사의 자율성을 약화시킬 수 있는 통합 논의를 추진하는 것은 정책적 모순이다. 해양수도는 정부 기관이나 기업의 이전 등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항만과 해운산업을 스스로 기획하고 투자하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권한이 공공기관에 있을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물론 항만공사의 혁신은 필요하다.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 기능은 조정해야 한다. 해외 공동마케팅과 디지털 전환, 탄소중립 항만 구축 등 국제 협력을 위한 항만공사 간 협력은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혁신과 통합은 다른 문제다.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자율적으로 발전할 것은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항만공사 통합이 아니라 자율성 강화다. 항만별 특성에 맞는 투자와 경영이 가능하도록 권한을 확대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항만공사 산업계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분권형 항만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세계 항만과 경쟁하는 길이며 국가균형발전을 실현하는 길이다. 정부는 4개 항만공사 통합 논의를 중단하고 항만공사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그것이 해양수도 부산을 완성하고 대한민국을 진정한 해양강국으로 만드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