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이 반인도적 범죄인 인신매매의 경유지로 악용된 실태가 드러나 충격을 준다. 성평등가족부는 지난달 21일 부산 사상구 한 모텔에서 감금을 피하다 추락한 인도네시아인 A 씨를 인신매매 피해자로 인정했다. A 씨는 인도네시아 현지 인력 송출업체를 통해 부산항에서 출항하는 중국 참치잡이 어선과 선원 계약을 맺고 한국에 입국했는데, 일정 차질로 국내 경호업체가 A 씨와 B 씨 등 외국인 선원들을 모텔에 가두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외국인 선원들은 승선 대신 한국 불법체류를 선택하고 8층 높이 모텔에서 탈출을 감행하다 추락, A 씨는 부상했고 B 씨는 목숨을 잃었다.
성평등부는 “운송·감금·착취 목적 등의 인신매매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2023년 인신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내·외국인을 통틀어 선원이 인신매매 피해자로 확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 씨가 계약한 중국 참치잡이 어선이 가혹한 노동과 선원 인권침해 악명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한국에서 이 원양사의 인력 관리를 대행한 국내 업체가 감금 등 인권침해에 가담한 사실이 정부 조사 결과 인정된 것이다. 중국 업체가 값싼 노동력 수급의 우회 경로로 부산항을 활용하며 인신매매 요소가 다분한 불법 행위와 관리 리스크를 한국 측에 ‘외주화’했고, 이로 인해 환승 거점인 부산항이 국제적 인신매매 경유지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A 씨 같은 ‘승선 대기’ 외국인 선원이 부산에 머무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게 이주민·인권단체의 설명이다. 국내 인력관리 업체가 숙소 출입을 통제하는 등 감금하는 것은 물론 이들에게 거액의 무단이탈 위약금을 강요한다는 내용이다. A 씨는 2년 전에도 같은 모텔에 감금당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외국인 선원 인명사고는 누적된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식 입국이 아닌 승선 대기 목적의 단기 통과 신분이라는 점 때문에 당국의 관리가 미치지 못하는 사이, 국내 인력관리사가 ‘관례’라는 미명 아래 일삼은 인권침해 행위가 쌓여 화를 키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승선 대기 외국인 선원에 대한 전반적 실태 파악과 동시에 관리 사각지대를 없애는 대책을 세워야 마땅하다. 외국인 선원이 국내 체류 과정에서 감금이나 여권 몰수 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는지 전수 조사하고, 국내 업체의 불법 행위가 적발되면 엄정하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업계는 외국인 선원이 무단이탈하면 불법체류자가 될 우려가 커 숙소 출입문을 외부에서 잠그는 게 관행이라고 항변하지만, 이는 당국이 철저한 불법체류 단속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지 민간업체의 권한은 아니다. 해양수산부와 고용노동부, 출입국 당국은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외국인 선원 인권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부산항이 국제적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인권침해의 중간통로로 얼룩진다면 ‘글로벌 해양수도 부산’으로의 도약은 요원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