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다시 춤과 음악을 흐르게 하라!

전시성 사업 예산 집중 배분정책 방향 틀어야

작은 창작 공간 지키고 예술가 안전망 구축을

이상헌 춤 비평가

  • 이상헌 춤 비평가
  •  |   입력 : 2026-08-05 18:33:05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춤과 음악은 인간이 자신에게 부여하는 원초적인 해방의 언어다.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고 발을 구르는 순간, 우리는 사회가 부여한 이름표와 위계를 내려놓고 의미 있는 존재로서 실존의 감각을 회복하게 된다. 그렇기에 예술은 언제나 지친 인간의 너그러운 피난처이자, 세상의 견고한 질서에 균열을 내는 부드러운 전복의 장이었다.

뉴스에는 연일 드높아진 국가 위상과 ‘K-콘텐츠’를 위해 투입한다는 엄청난 예산 등 장밋빛 헤드라인이 가득하다. 부산에서는 전임 시장이 예술계의 반발을 무시하며 추진하던 퐁피두 미술관 유치나, 단 3회 공연에 105억 원을 쏟아붓겠다던 라스칼라 극장 초청 계획이 재검토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들린다. 겉으로만 보면 분명 반가운 변화다. 그런데 이런 축제의 한가운데서 무대와 연습실에서 마주치는 예술가의 얼굴에는 왜 피로와 소외의 그늘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일까. 이 기시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권력이 춤과 음악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복기할 필요가 있다.

보수적 규율 사회에서 인간 신체는 국가 생산성이나 가부장적 질서를 위해 정교하게 통제되어야 하는 부품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순간, 그 공간은 포스트 아나키즘 작가 하킴 베이가 말한 ‘일시적 자율 구역’으로 변모한다. 미셸 푸코의 관점에서 이는 국가의 생체 권력에 대한 근원적인 저항이다. 위정자들은 이런 에너지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했다. 영국 대처 총리 이후 존 메이저 내각이 1994년 제정한 ‘형사사법 및 공공질서법’이 ‘반복적인 비트로 구성된 음악’을 야외에서 틀지 못하도록 경찰력을 동원할 수 있게 한 것이나, 나치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유대인의 정신이 깃들었다며 재즈를 퇴폐 음악으로 낙인찍고, 스윙 리듬에 맞춰 춤추던 ‘스윙 청년단’ 멤버들을 수용소와 군대로 보낸 것도 정확히 같은 맥락이다. 1926년 제정해 2017년까지 91년간 뉴욕 시민의 춤출 권리를 묶어두었던 인종 차별적 ‘카바레 법’, 머리카락과 치마 길이까지 자로 재며 대중문화의 숨통을 조였던 1970년대 유신 정권의 긴급조치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통제는 언제나 인간의 영혼을 ‘길든 국민’이라는 규격 안에 가두려는 폭력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21세기의 행정 권력이 예술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오늘날 국가는 더 이상 곤봉을 들고 클럽을 급습하거나 금지곡 목록을 발표하지 않는다. 대신, 성과 지표와 엑셀 시트라는 훨씬 교묘하고 차가운 도구를 손에 쥐었다. K-콘텐츠의 글로벌 비전을 보고하는 국무회의 자리에 한국 예술의 기초를 떠받치고 있는 순수예술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과거 독재 정권이 춤과 음악을 금지했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존재론적 폭력, 즉 ‘소거’이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예술, 당장 글로벌 마켓에서 수백억 매출을 올리지 못하는 예술은 현재의 국가 시스템 안에서 아예 태어나지 않은 존재 취급을 받는다. 과거 권력이 노래하고 춤추는 신체를 감옥에 가두었다면, 오늘의 권력은 춤출 수 있는 무대의 바닥을 제한함으로써 예술가의 숨통을 조인다.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파워는 ‘감사 사회’에서 현대 사회가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측정할 수 있는 성과로만 평가하려 드는 강박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시정이 교체된 부산의 풍경 역시 이러한 계량화된 폭력에서 예외가 아니다. 수백억 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전시성 대형 사업과 메가 이벤트를 포기하자는 데, 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딴지를 거는 사이에 오랜 시간 갈증에 시달린 애타는 지역 예술은 소외되고 있다. 선거철마다 예술인의 굳은 손을 마주 잡으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던 정치인들은 당선증을 쥐는 순간 약속이나 한 듯 기억상실증에 빠진다.

정치적 망각과 자본의 논리가 드리운 그늘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만의 호흡을 이어가는 예술가의 숭고한 노동에 이제는 응답해야 할 때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낡은 연습실에서 빚어낸 작은 움직임과 선율이 지친 이웃의 삶을 치유하는 기적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예술의 진정한 생명력은 화려한 포장지가 아닌 그들의 치열한 숨소리에 깃들어 있다. 번지르르한 외래종 꽃을 심어 도시의 겉모습을 치장하기 전에 척박한 토양을 맨몸으로 견디며 피어나는 우리 발밑의 꽃들에 먼저 안온한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일회성 이벤트에 집중된 막대한 예산의 방향을 틀어 곳곳의 소규모 창작 공간을 지키고, 예술가가 생계 위협 없이 작업에 매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창작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술가의 호흡이 차가운 행정의 논리 앞에 지워지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한다. 인간을 온전히 인간답게 만드는 근원적 해방의 언어, 그 자유로운 춤과 음악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를 수 있도록 넉넉한 품을 내어주는 사회를 기대한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2. 2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3. 3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4. 4“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5. 5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6. 66일 부산국제영화제 팡파르…사상 첫 화요일 개막
  7. 7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8. 8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9. 9“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10. 10“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1. 1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2. 2‘맹탕 청문’ 의식 부산시의회, 교통·시설公 송곳검증 벼른다
  3. 3부울경 펀드인데 절반가량은 수도권 투자…제도취지 무색
  4. 4장동혁, 육영수 생가 방문…‘암살자(들)’로 진보 맹공
  5. 5軍 “北 지뢰 터져 장병 부상” 결론…군사분계선 이남 제거작전 돌입(종합)
  6. 6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7. 7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8. 8[속보] 李 대통령 지지율 37.4%.. 민주 42.5%, 국힘 38.4%
  9. 9[속보] ‘실탄 없이 경계 근무’ 사례 추가 확인, 국방부 기관 경고 방침
  10. 10‘盧 수사’ 與-한동훈 논쟁 확전…“석고대죄하라”-“성역화 말라”
  1. 1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2. 2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3. 3지역상품 우선구매 ‘부산이 삽니다’ 민간 확산 드라이브
  4. 4누리호 7일 발사 앞두고 6일 기립(종합)
  5. 5증권·산업계도 AI 해킹 포비아…휴일 반납 하고 긴급 점검
  6. 6SNS레시피가 제품으로…농심 스낵 ‘너구링’ 선봬
  7. 7[한 손 뉴스] 양양 송이 ㎏당 171만 원…생산량 줄어 역대 최고가
  8. 8“북항 더 핫하게” 시민과 명소화 모색
  9. 9기업 보유 토지 공시지가 공시 의무화…‘땅부자’ 상장사 수면 위로
  10. 10어선원 직불금, 60일 승선하면 받는다
  1. 1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2. 2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3. 3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4. 4“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5. 5“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6일
  7. 7김해시의원 활동비는 1만 원 깎였다
  8. 83년 표류 창원 제2국가산단…LH 사업비 낮추나
  9. 9출소 한 달 만에 또…유치장 난동 40대 징역형
  10. 10“디지털농업·특화브랜드로 청년농부 유입 이끌 것”
  1. 1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2. 2“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3. 3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4. 4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5. 5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6. 6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7. 7“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8. 8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9. 9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10. 10‘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국제칼럼 [전체보기]
누구도 법 앞에 국민보다 ‘더 평등’할 수 없다
배지의 실력행사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논란의 AG
상표권 알박기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중수청·공소청 혼란 땐 수정 보완 주저 말아야
북 미사일 위협 속 ‘빈총 경계’ 안보 불안 키워선 안 된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드골 대통령과 군복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