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다 보면 자주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역량은 지역민의 삶과 얼마나 가까이 만나고 있는가? 수많은 이론과 연구 성과가 지역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부산은 고령화와 청년 유출, 산업구조의 변화 및 해양수산특화 도시, 돌봄과 건강 등 여러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어느 하나 행정만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대학이 교육과 연구만으로 풀어낼 수도 없다. 지역에서 발생한 문제를 함께 발견하고, 이를 교육과 연구의 과제로 발전시키며, 현장에서 해법을 시험하고 그 결과를 다시 지역에 돌려주는 협력의 과정이 필요하다.
대학은 서로 다른 학문을 한자리에 놓고, 지역의 문제를 새로운 질문으로 바꾸며, 학생과 연구자가 해결 가능성을 자유롭게 탐색하는 공간이다. 지역문제가 수업과 문제 및 프로젝트 기반 학습, 캡스톤디자인과 연구로 연결되면 학생들은 지식을 외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주민과 만나고, 문제의 원인을 살피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며 실행 가능한 방안을 찾게 된다. 이 과정은 전공역량을 기르는 교육인 동시에, 학생들이 지역공동체의 주체로 성장하는 경험이 된다.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은 반복되는 생활 문제와 정책 수요를 파악하고 관계기관을 연결할 수 있다. 대학은 이러한 문제를 교육과 연구의 언어로 바꾸고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과정으로 설계한다. 지역사회는 제안된 해법이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지를 함께 판단한다.
최근 우리 대학 식품영양학전공은 해운대구와 협약을 맺고 ‘우리집 건강밥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해운대구는 지역의 만성질환 어르신과 현장을 대학과 연결했고, 대학은 영양평가와 상담·교육, 식단 지원 과정에 학생이 참여하도록 교육을 설계했다. 학생은 전공지식을 실제 생활문제에 적용하고 주민과 소통하는 경험을 쌓았으며, 지역사회에는 어르신의 건강한 식생활을 지원하는 서비스가 제공됐다.
이 사례의 의미는 지역의 수요가 대학의 교육과 만나고, 학생의 배움과 실천이 다시 지역으로 돌아가는 작은 순환을 보여줬다는 데 있다. 주민 역시 단순한 교육 대상이나 사업의 수혜자가 아니다. 자신의 생활과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함께 정의하고, 해결 과정과 결과에 의견을 내는 협력의 주체다. 이러한 관계가 형성될 때 지역문제는 학생을 위한 일방적인 ‘교육 소재’가 아니라 지역과 대학이 함께 풀어가는 공동의 과제가 된다.
지역혁신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는 데 푸드시스템이 예가 될 수 있다. 푸드시스템은 단순히 식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농수산물의 생산 가공 유통 판매 소비 폐기에 이르는 가치사슬뿐만 아니라 건강 환경 노동 기술 산업과 정책까지 식품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각 단계와 주체는 역할이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충분하고 안전하며 영양가 있는 식품에 안정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식량안보라는 큰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지역혁신도 이와 흡사하다. 대학의 교육, 기업의 기술개발, 지자체의 정책, 연구기관의 연구가 각각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이어지지 않으면 개별 사업으로 끝나기 쉽다. 반대로 지역문제 해결과 지역인재 양성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문제 발굴, 교육과 연구, 현장 적용, 평가와 환류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면 하나의 협력 경험이 다음 교육과 정책의 자산으로 축적된다.
해운대구와 우리 대학의 협업과 같은 작은 시도가 여러 지역과 분야에서 반복되고, 그 경험이 서로 공유될 때 부산 고유의 지역혁신 시스템도 모습을 갖출 수 있다. 대학도 지역과 동떨어진 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고, 지역사회 역시 대학을 단순한 인력양성기관이나 사업 수행기관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지역의 문제를 대학의 배움으로 연결하고, 그 배움을 다시 부산의 변화로 돌려놓는 것. 그 과정에서 학생이 지역을 이해하고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로 성장하게 하는 것. 부산형 지역혁신은 이러한 작지만 지속적인 연결에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