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골을 넣지 않는다. 경기 마지막 순간 수비수를 제치고 공을 차는 사람은 감독이 아니다. 선수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는 홍명보 감독의 선택 하나하나를 지켜봤다. 왜 손흥민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는지, 왜 그 순간 교체했는지를 두고 수많은 말이 오갔다. 감독의 전술과 용병술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많은 논쟁은 역설적으로 손흥민이라는 뛰어난 선수의 가치를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정명훈 지휘의 야외 오페라 ‘카르멘’을 보면서 문득 축구 생각이 났다. 그날 밤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은 정명훈이 아닌 처음 만난 메조소프라노 미셀 로지에였다. 그녀가 카르멘으로 무대에 서자 분위기가 달랐다. 관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당겼다. 한 명의 뛰어난 성악가가 무대 전체의 온도를 바꿀 수 있음을 직접 느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오페라에도 감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수도 있다. 음악감독이 축구의 감독이라면 성악가와 오케스트라는 그라운드를 뛰는 선수다.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이들이 뛰는 경기장이다. 좋은 감독과 뛰어난 선수, 제대로 된 경기장이 균형을 이뤄야 좋은 경기가 만들어진다.
축구는 어쩌면 조금 낫다. 감독 연봉이 많다고 논란이 일어도 세계적인 선수는 감독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 손흥민이 감독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경기장에서 무엇을 보여주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어떨까. 부산은 막대한 세금을 들여 북항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음악감독을 모셨다.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감독과 선수, 경기장 투자는 균형을 이루고 있는가. 세계적인 음악감독을 모시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이고 수준 높은 공연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정 지휘자의 세계적인 명성과 실력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 명의 세계적인 음악감독에게 지나치게 많은 기대와 재원을 집중하는 방식이 과연 부산 음악 발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 지휘자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지휘자다. 이제 막 출범을 준비하는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입장에서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부산시 재정은 무한하지 않다. 서울보다 재정 여건이 넉넉한 도시가 아니다. 오페라하우스에 전속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 좋은 성악가를 무대에 세워야 하고 합창단과 무대 제작진도 키워야 한다.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고 시민에게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는 데 투자가 필요하다. 감독 한 사람에게 많은 예산과 관심을 집중하고, 정작 선수와 시스템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면 과연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까.
부산에 세계적인 지휘자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이름도 필요하다. 그러나 부산에 오래 머물며 전속 오케스트라와 호흡하고, 다양한 작품을 연구하며 부산의 오페라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쏟을 지휘자가 절실하다. 꼭 부산 출신일 필요는 없다.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사람만을 고집할 이유도 없다. 지명도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실력이 있고, 부산과 함께 성장하며 부산만의 오페라를 만들어 갈 사람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미셀 로지에를 보면서 문득 오페라하우스 홍보대사를 맡은 조수미 선생이 떠올랐다. 세계적인 성악가의 이름을 내거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의 경험과 안목이 공연 기획과 성악가 육성, 오페라하우스 운영에 구체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처음 만난 미셀 로지에에게 감동 받았듯, 시민이 부산오페라하우스에서 아직 이름을 알지 못하는 훌륭한 예술가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 부산의 젊은 예술가를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오페라하우스를 발판으로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길 바란다.
부산오페라하우스에 유명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 필요한 것은 부산의 오페라를 유명하게 만들 사람이다. 감독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음악감독과 성악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제작진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예술의 중심에는 시민이 있어야 한다. 좋은 감독, 좋은 선수, 좋은 경기장.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좋은 경기가 만들어진다. 오페라도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