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쯤 모은 것 같습니다.” 서너 평 남짓한 작은 다실 안, 벽면에 빼곡히 걸려 있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그의 눈빛은 반짝였다. 작품들은 대부분 한국화와 붓글씨 등의 서화(書畵)들이었다. 지역 근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평가를 받는 작가부터 이름도 생경한 지역작가들의 작품까지 그의 컬렉션의 키워드는 지역이었다. 그가 아는 작가들이었고, 그가 고민했던 주제의 작품들이었고, 그와 함께 성장한 작가와 작품들이었다.
그가 수집한 작품의 작가는 이제는 많은 분이 작고하셨고 더 이상 작품활동을 할 수 없는 분이 대다수였다. 그는 매우 정확하게 작품의 배경과 이력, 다른 작가들과의 영향 관계, 작품 내용과 시대적 의미를 잘 알고 있었고 마치 작품이 만들어진 그 시대로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게 설명을 해주었다. 가끔 미술관에서 지역 미술사 기획전시를 준비할 때 그의 수집 작품들을 빌려가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매우 뿌듯하다고 했다. 자신의 컬렉션이 한 개인의 소장품에 멈추지 않고 지역 미술사의 의미를 평가하며 많은 사람과 함께 보며 감상할 수 있어서 더욱 즐거운 일이라고. 더하여 그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고 작품 구매를 주저할 때도 있었으나 힘들게 수집한 작품은 그 시절 작가의 작품활동이 멈추지 않도록 하는 작은 힘이 되었기에 지금 지역 미술사를 정립하고 연구하는데 작게나마 일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하는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최근 그는 지역 미술 기획전에 선보일 지역의 작고 작가 작품이 지역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일에 열정을 쏟는다고 한다. 그 작품을 서울의 컬렉터가 수집하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달려가 소장가에게서 작품을 구매해 전시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의 작품 수집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사회적 의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컬렉터의 사명, 컬렉터의 시대.
현대미술에 있어서 19세기는 작가의 시대, 20세기는 비평가의 시대, 21세기는 컬렉터의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컬렉터는 단순히 작품을 수집하는 것에 그치지 않기에 미술계에서 그 기능과 영향이 매우 크다. 일례로 영국의 광고 재벌 찰스 사치(1943~)는 데미언 허스트(1965~) 등의 영국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해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게 했다. 최근 허스트는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었고 큰 호응과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치는 현대 미술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 컬렉터고 그의 컬렉션은 다른 컬렉터들과 갤러리, 경매회사의 작품 구입에 영향을 끼치며 작품 가격을 조정할 정도였다. 그는 사치갤러리를 열어 과감한 전시 기획과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작가를 홍보했고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나 작업실의 작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벌크 바잉(Bulk buying)으로 저렴하게 작품을 구매해 단기간에 판매하는 아트 플리핑으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기도 했다. 마치 부동산 단기투자인 하우스 플리핑처럼 미술작품을 투자자산으로 인식하게 했다. 이제 시작하는 무명 또는 젊은 작가의 작품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그 작가를 마케팅해 유명하게 만들고, 미술계 큰 손인 사치의 컬렉션이 보증하는 작가이니 작품 가격은 올라가는 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순기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작품 가격이 올라간다는 것만으로 미술계의 순기능이라고 평가할 수도 없지만, 사치의 변심으로 미술시장에 대량으로 재판매되는 작가의 작품 가격은 폭락하게 됐고 그 작가의 명성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그 작가는 사치에게 버림받았고 작가의 예술성은 끝났다고 해석됐고 미술 경매시장에서 80%까지 가격이 폭락한 작가도 있었다. 다른 컬렉터들과 갤러리들에게 사치의 작품 매각은 소문만으로도 공포였다고 한다. 작품의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방대한 컬렉션과 자본력을 행사한 사치는 ‘미술시장을 교란하는 작전세력’이라고 비난받기도 했다.
가끔 아트 페어나 갤러리, 미술시장에서 예비 컬렉터들로부터 ‘관심 있는 작품의 가격이 오를 것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듣게 된다. 정답은 알 수 없다. 거창한 사회적 의무와 명분이 아니더라도 나의 예술품 컬렉션은 건강한 경제활동이자 즐거운 미적 향유이기를 바랄 뿐이다.
김미희 올아트22C 문화기획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