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와 간식, 개껌까지 든든히 먹고, 마무리로 물도 찹찹 소리 내며 마신 반려견 ‘우주’가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 뭐가 더 필요한 게 있는 걸까. 골똘해진 내 표정을 읽은 우주가 상체를 숙이고 두 앞발을 쭉 뻗는다. 엉덩이는 한껏 치켜든다. 살랑, 털이 부숭한 꼬리를 장난스럽게 흔든다. 플레이바우(play bow) 자세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우주는 심지어 말도(!) 한다. 반려인 4년 차. 개 언어 자동 번역기가 팽팽 돌아간다. “우욹(어서)” “그르렁(놀자).”
종일 납작한 모니터 속, 더 납작한 글자들과 씨름하던 나는 스트레칭을 조금 한다. 그런 뒤 무릎을 구부리고 상체를 한껏 낮춘다. 기역 자가 된 몸으로 발을 구르며 우주와 함께 거실을 뛴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뛰다가 소파에 벌렁 드러눕는다. 혀를 길게 내밀고 헥헥거리는 우주도 내 옆에 눕는다. 따끈하고 말랑한 개의 배를 쓰다듬는다. ‘개’의 추천으로 시작된 놀이 시간이 만족스럽게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낯선 기분에 사로잡힌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에 잠긴다. 요즘의 내 일상이 기계적인 알고리즘의 추천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휩쓸려 읽고, 보고 또 구매하는 것에 이토록 익숙해져 있었다니.
지난 주말엔 고등학교 동창 친구 셋을 만났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설레었다.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몇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일찌감치 나갈 준비를 마쳤다. 외출복을 입고서 침대에 드러누워 사진첩을 뒤적여 친구들과 오래전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아냈다. 추억 여행을 먼저 떠났다.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단체 대화방에 보내두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음속에 꼬리가 있다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을 테지.
약속 장소에 친구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조금만 걸어도 금방 지치는 그런 푹푹 찌는 날씨였지만, 친구들의 표정은 밝았다. 특히 아들 둘을 키우는 워킹맘 친구의 얼굴에선 우리를 향한 반가움과 더불어 해방감이 느껴졌다. 친구는 자신을 ‘자유부인’이라 칭했다. 돌봄과 밥벌이 사이에서 겨울 식량처럼 모아왔을 친구의 자유. 그 귀한 것을 들고 먼 곳까지 달려온 친구를 온 마음을 다해 와락 껴안아 주고 싶었다.
출입문에 블루리본 스티커가 잔뜩 붙은 쌀국숫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20년 전에도 우리는 다정히 둘러앉아 밀면과 만두 한 접시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지. 그때의 기억이 아주 오랜 시간을 건너뛰어 지금 우리의 자리에 포개졌다. 좋아하는 남학생에 관한 이야기의 자리엔 아침부터 허리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간 남편 이야기가, 아주 매운 닭꼬치에 대한 예찬의 자리엔 요즘 먹는 효과 좋은 영양제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앉았지만.
식사를 마친 뒤엔 칵테일바에 갔다. 주문한 칵테일이 테이블에 놓였다. 조명이 무척 어두웠다. 잔을 집기 위해 캄캄한 테이블 위를 한참 더듬어야 했다. 게다가 손님으로 가득 찬 매장은 시끄러웠다. 잔은 몇 번이나 엎지를 뻔했고, 대화는 번번이 길을 잃었지만 우리는 즐거웠다. 한 사람이 웃으면 모두가 따라 웃었다. 재미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재미있었다. 말하지 않고도 말했다. 그건 우리에게 한때 익숙한 방식이었다. 늦은 밤, 기숙사 사감의 눈과 귀를 피해 야행성 설치류처럼 모여 앉아 무언가를 함께 나눠 먹던 그때의 우리.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3차로 찾은 작은 호프집에서 모임이 마무리됐다. 호출한 택시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헤어지면 또 언제 보나. 아쉬웠다. 몸을 한껏 낮추고, 숨겨둔 꼬리라도 꺼내 흔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꾹 눌렀다. 알고리즘의 추천 하나 없이 만나 20년의 시간을 나란히 걸어온 다정한 친구들. 다음에 만날 때엔 친구들이 더 많은 자유를 알토란처럼 모아오겠지. 여자의 우정은 첫사랑이라던 한 작가의 말을 떠올린다. 더 애틋한 마음이 된다. 벌써 기다리는 마음이 된 나는 인적 드문 도로 위를 달려 집으로 향한다. 잘 가, 우리 또 만나. 다음엔 더 오래 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