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프로젝트 헤일 메리(Project Hail Mary)’를 보고 나서 과학과 허구를 절묘하게 엮어낸 휴먼 드라마라는 인상을 받았다. 러시아 과학자 이리나 페트로바가 태양 스펙트럼에서 이상 현상을 감지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원인은 아스트로파지(Astrophage)라는 미생물이었다. 이 생명체는 태양의 에너지를 먹어치우며 태양을 서서히 식게 만들고, 이산화탄소가 풍부한 금성으로 이동해 번식한다. 그리고 마치 철새가 회귀하듯 다시 태양으로 돌아오는 주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이 계속되면서 다른 별들까지 하나둘 빛을 잃고 온도가 내려간다. 그대로 방치하면 지구는 빙하기와 문명 붕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국제 공동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약 12광년 떨어진 타우세티 항성계의 한 별만이 아스트로파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탐사선이 필요한 인류는, 재앙의 원인인 아스트로파지를 역으로 연료로 활용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하는 우주선을 개발한다. 그리고 이 생명체의 배양법을 찾아낸 분자생물학자 그레이스는 반강제로 탐사선 ‘헤일 메리’호에 태워져 타우세티로 향한다.
그러나 긴 동면 끝에 도착했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그레이스 한 명뿐이었다. 동행한 두 우주인은 동면 장치의 이상으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홀로 남겨진 그는 그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를 만난다. 같은 위기에 처한 또 다른 문명에서 온 외계 생명체, 그레이스가 ‘로키(Rocky)’라고 이름 붙인 존재다. 로키의 행성 에리드(Erid) 역시 아스트로파지로 인해 멸망 위기에 처해 있었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같은 장소에 도착한 것이었다.
영화의 핵심은 결국 그레이스와 로키 관계다. 인간과 생김새도, 언어도, 감각 기관도 전혀 다른 두 존재는 몸짓과 수학, 음악을 통해 소통하며 이해의 폭을 넓혀간다.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잃지 않은 이들은 점차 깊은 신뢰를 쌓고, 관객 역시 어느 순간 우주의 물리법칙보다 그들의 우정에 더 몰입하게 된다. 그 우정은 마침내 위기를 극복하는 결정적 힘이 된다. 탐사선 사고로 의식을 잃은 그레이스를 구하기 위해 로키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그 희생 끝에 그레이스는 아스트로파지를 잡아먹는 미생물 타우모에바(Taumoeba)를 발견해 두 문명을 구할 해결책을 찾아낸다.
우주선, 외계 생명체, 광속 비행.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하드 SF 영화처럼 보인다. 태양에서 생존하며 에너지를 먹고 증식하는 아스트로파지 같은 미생물의 존재는 솔직히 상상력이 지나치게 비약된 설정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그런 의구심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두 생명체가 보여주는 우정과 신뢰, 그리고 각자의 문명을 구하기 위해 펼치는 필사적인 협력은 엔지니어 출신인 나의 의구심마저 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진짜 중심은 우주 물리학이 아니라, 멸망의 위기에 처한 서로 다른 문명에서 온 두 존재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며 위기를 극복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감정선에 있다.
보통 재난 영화는 한 사람의 초인적인 활약이나 희생이 인류를 구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제 그 공식은 관객들에게 익숙함을 넘어 다소 식상하게 느낀다. 최근 SF 영화들이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처럼 사랑과 희생, 인간성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옮겨간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프로젝트 헤일 메리’ 역시 그레이스의 헌신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지구를 구한 것은 결코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페트로바의 최초 발견에서 시작해 전 세계 과학자들의 연구와 공학자들의 분투, 그리고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인류 공동체의 연대가 있었기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다른 재난 영화와 가장 크게 다른 지점은 그마저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두 문명을 구하는 마지막 열쇠는 절박한 위기에 함께 처한 또 다른 문명의 생명체와의 협력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한 영웅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신뢰와 협력을 통해 함께 살아남는 이야기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우주를 향하면서도 결국 인간을 향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도 다르다는 이유로 흔히 서로를 경계하고 밀어낸다. 문화가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단정하고 선을 긋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조용히 말한다. 문명을 구하는 힘은 결국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 능력인지 모른다. 서로 다른 존재에게 다가가 손을 내미는 것, 그리고 끝내 친구가 되어가는 것.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