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터를 잡고 산 지 어느덧 9년이 흘렀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 동안 나는 부산의 역동성에 반했고, 이 도시가 지닌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외지인에서 부산 시민으로 동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고 안타까운 지점이 있다. 바로 부산의 ‘교통 문화’와 ‘시민의식’이다. 부산이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허브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마천루보다 도로 위와 지하철 안의 ‘품격’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
부산의 운전 문화는 전국적으로 악명이 높다. 이곳에서는 정석대로 깜빡이를 켜고 진입하려 하면 뒤차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가속 페달을 밟아 빈틈을 지워버린다. 반면, 차선 변경 한계점에서 깜빡이도 없이 무작정 머리부터 들이미는 무례한 끼어들기에는 묘하게 관대하다. 광안대교 진입로에서 3, 4km 전부터 인내하며 서행하던 차량 대열을 비웃듯 마지막 순간에 뻔뻔하게 끼어드는 차량들을 볼 때면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조그만 틈만 보이면 뒤차의 흐름을 막아서라도 당당하게 대가리를 들이미는 행태는 예술을 넘어 ‘뻔뻔함의 일상화’처럼 느껴진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무질서한 끼어들기에는 시민이 단호하게 저지하며, 질서를 지키는 이들의 권리를 보호한다. 왜 유독 부산은 질서를 지키는 이에게는 인색하고, 무례한 이에게는 길을 내어주는가.
지하철 안의 풍경은 더 씁쓸하다. 부산 지하철은 서울에 비해 폭이 좁은 협궤 열차 형태다. 공간이 협소할수록 서로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빈 좌석이 많아도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으로 달려가 자리를 차지하는 젊은이들, 심지어 옆자리가 비어도 굳이 임산부석으로 옮겨 앉는 모습은 부산의 시민의식이 국제적 수준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보여준다. 서울에서는 임산부석을 비워두는 것이 상례이고 혹 앉더라도 임산부가 보이면 즉시 비켜주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 통로를 가로막고 다리를 꼬고 앉아 타인의 옷에 발이 닿거나 통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의 산물이다.
최근 70대 손님이 학교 앞 한산한 도로에 잠시 주차했다가 10분 만에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주차금지 구역이니 법규 위반은 맞다. 하지만 정작 시민이 분노하는 지점은 ‘집행의 불공정함’에 있다. 정작 차량 소통을 방해하고 사고 위험이 높은 30m앞의 좁은 골목길 상시 불법주차는 수년째 항의에도 단속 한번 없이 방치되고 있다. 행정은 차량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시민의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 단속하기 쉬운 곳만 골라 기계적으로 딱지를 떼는 행정은 시민의 질서 의식을 꺾고 불신만 키울 뿐이다. 부산은 지형적 특성상 도로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잘 안다. 그렇기에 대책이 더욱 정교해야 한다. 행정의 결단과 시민의 배려가 만날 때, 부산의 교통 정체는 비로소 해소될 것이다.
글로벌 허브 도시의 완성은 화려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도로 위에서 켜는 깜빡이 한 번과 지하철에서 비워둔 임산부석 하나에서 시작된다. 부산을 찾는 내외국인들이 ‘불편한 정체’가 아닌 ‘품격 있는 배려’를 기억하며 돌아가는 도시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