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끊이지 않는 초대형 기업의 성과급 논란은 해묵은 양극화 갈등과 분배 정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첫 도화선은 삼성전자의 노노 갈등에서 시작돼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는 중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반도체를 담당하는 DS 부문과 스마트폰·가전을 담당하는 DX 부문 간 성과급 격차는 구성원 사이 깊은 감정의 균열을 낳았다. 대기업 내부의 결속을 뒤흔드는 내부 해체선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격차와 갈등은 부산 울산 경남의 동남권 산업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박 자동차는 수백, 수천 개의 하청·기자재 기업과 소상공인이 촘촘하게 결합한 가치사슬(Value Chain)의 총합이다. 그런데 공동이 창출한 달콤한 과실을 최상단 특정 집단만이 점유한다면 전체 사회의 신뢰와 산업 생태계는 무너져 버린다. 내부 파열음은 대기업 울타리 안에만 가둬지진 않는다. 대기업에 다니지 않는 잉여의 전 구성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다.
두 거장 맹자와 정도전은 어떤 시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까. 2300여 년 전 맹자는 산림천택(산림과 하천 연못과 숲), 여민공지(민과 함께 나눔)를 주창했다. 산림은 나무 땔감 약재 숯 구황작물을 얻는 가용 공간이었다. 천택 바다는 어패류 소금 수산물을 생산하는 경제 기반이었다. 여민공지는 ‘거기서 나는 이익을 백성과 함께 나눠야 한다. 어떤 특정 권력이 공동체의 생존 기반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주자는 맹자의 뜻을 산림천택의 사용과 수익을 백성과 함께 나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맹자와 주자에게 중요한 건 소유가 아니었다. 누가 차지하느냐보다 ‘누가 이용하고 누가 그 혜택을 누리는가’가 핵심이었다.
여민공지 여민동락은 고려의 정치 논리로 이어졌다. 인종 5년 조정은 산택의 이익은 백성과 함께한다고 선언했다. 충숙왕 역시 산림천택은 백성과 이익을 함께 하는 것이라며 권세가들의 사적 점유를 막고자 했다. 왕실과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자원 상당이 여기에서 나왔다. 때문에 산림천택을 누가 이용할 것인가는 백성의 생계와 국가의 존폐와도 결부됐다. 고려 말에는 권세가들이 산림과 어장 염전을 사적으로 점유하면서 백성의 생업 기반이 크게 흔들렸다. 조선 건국의 기틀을 다진 정도전은 공공 자원을 국가의 통제하에 묶어두고 소수의 사적 독점을 원천 차단했다.
맹자, 정도전은 “공동체의 존립 기반이자 생존의 토대가 되는 공공재를 특정 소수가 사유해서는 안 된다. 이익과 결실을 균등하게 향유해야 한다”는 사상적 공통분모를 공유했다. 두 사람의 방법론 사이에는 매우 정교하고도 전문적인 차이는 있다. 맹자가 제시한 여민공지는 위정자의 도덕적 각성과 자발적인 시혜적 분배를 촉구한다. 맹자에게 통치자는 백성의 마음을 얻으려면 탐욕을 절제하고 자원을 기꺼이 나누어야 한다. 맹자가 지배층의 부를 나누는 ‘도덕적 태도와 인식의 전환’을 역설했다면, 정도전은 제도적 틀을 짜서 독점의 기회 자체를 막는 ‘공적 시스템의 개혁’을 외친 것이다.
맹자와 정도전이 제기한 공유지 산림천택은 지금의 버전으로 초대형 글로벌 기업일 수 있겠다. 글로벌 기업이 성장하려면, 가장 먼저는 경영진 노동자의 몫이 크다. 여기에 많은 가치사슬이 얽혀있다. 국민이 혈세를 내어서야 만들 수 있던 교통망, 투자한 주주, 하청 노동자, 이를 떠받치는 수다한 산업 생태망도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낼 수 있던 압도적 성과와 초과 이윤은 사회 전체가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지탱해 준 토대 위에서야 가능하다. 이를 망각한다면 분배를 둘러싼 갈등은 나날이 커질 건 분명하다.
만약 맹자와 정도전이 살아 돌아온다면, 성과급 보상을 둘러싼 일련의 논의를 뭐라 그럴까. 해법은 보상 그 자체의 절대적인 크기가 아니라, 보상이 결정되는 과정의 투명성과 정당성, 그리고 공동체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공감대에 달려있다. 사회적 설명이 결여될 때, 수천만 원의 성과급은 공동체를 쪼개는 갈등의 불씨로 번져날 건 확실하다. 삼성전자의 성과급 논란과 부울경 산업 현장의 아우성은 결국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공동체가 함께 일구어낸 성과를, 과연 누구의 몫으로 정의하고 나눌 것인가.” 토건, 선박, 왕릉 조성에 쓰일 나무 한 그루 캘 때 공조·병조·예조의 국가 조직과 지역사회 수령과 향리, 민들의 노동력이 총동원됐다. 그 실재한 역사의 내력을 지금 헤아릴 때다.
대기업들은 공정한 보상 기준을 확립하는 내부적 과제를 넘어, 성과 공유 체계를 실질적으로 넓혀가는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이중 구조와 산업 전반의 양극화를 완화할 촘촘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적 안전망을 설계하고 집행해야 한다. 노동계 또한 정당한 권리를 외치는 것만큼이나 산업 생태계 전체를 살피는 공동체적 책임을 고심해야 할 거다. 맹자, 정도전의 사유가 조금이나마 윤활제 역할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