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시민의 삶을 지탱해 온 골목상권은 지역경제의 가장 작은 단위이면서도 경제 흐름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현장이다. 소비가 살아나면 가장 먼저 활기를 되찾고, 경기가 위축되면 가장 먼저 어려움을 겪는 곳도 골목이다. 골목의 변화는 곧 부산경제의 현재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 호조에 힘입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월간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반도체 중심의 대외경제 흐름은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온기는 골목의 체감 경기로 좀처럼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고금리와 고물가, 인건비와 원재료비 상승 속 올해 1분기 부산의 일반상가 공실률은 14%로 전국 평균인 13%를 웃도는 등 상권이 위축되고 있으며, 자영업자의 마지막 안전망으로 불리는 노란우산 폐업공제금 지급 건수도 지난해 6415건으로 5년 전보다 30% 이상 증가했다.
여기에 소비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소상공인에게 또 다른 도전이다. 온라인 구매와 배달의 일상화, SNS와 플랫폼 중심의 소비 확산 등 소비 패러다임은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많은 소상공인은 이러한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더 이상 개별 점포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경제의 가장 넓은 기반을 이루는 소상공인의 위기이자, 지역경제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새롭게 출범한 부산시 민선 9기가 ‘민생 100일 비상조치’를 통해 민생경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시점이다. 위기 극복을 위한 단기적 처방을 넘어 소상공인이 스스로 성장하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상공인의 특성과 성장 단계에 맞춘 ‘투트랙’ 정책이 필요하다.
먼저 생계형 소상공인에게는 경영 안정이 우선돼야 한다. 카드 수수료와 금융 부담 완화, 에너지 비용 지원 등 안전망을 강화하는 한편, 경영 컨설팅과 디지털 전환, 판로 확대 등 개별 맞춤형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또한, 폐업 소상공인에게도 재창업과 취업 연계, 교육을 지원해 실패가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와 병행해 성장 가능성을 갖춘 소상공인을 체계적으로 발굴·육성하고, 장기적으로는 골목 단위의 특화 상권과 로컬 브랜드를 전략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 정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영도의 작은 어묵 공장에서 출발한 삼진어묵과 온천장의 카페에서 시작한 모모스커피는 부산에 뿌리를 둔 소상공인이 혁신과 브랜딩을 통해 도시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다. 이들의 성장은 한 점포의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공급망을 넓히며, 주변 상권의 경쟁력까지 높이는 지역경제의 성장 거점이 된다. 성장 단계별 맞춤형 지원과 브랜드 육성 체계를 고도화해 부산 곳곳에서 이러한 사례가 꾸준히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부산만의 로컬 브랜드와 특화상권을 전략적으로 구축해 나가야 한다. 부산의 경쟁력은 획일적인 개발이 아니라 16개 구·군이 가진 서로 다른 매력에서 나온다. 영도의 해양 문화와 커피, 동래의 전통시장과 역사·문화, 기장의 먹거리와 관광자원처럼 부산 곳곳에는 지역 고유의 자산이 존재한다. 전포와 광안리, 영도 등에서는 이미 부산만의 정체성을 담은 로컬 브랜드들이 새로운 골목문화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골목상권이 지속 확산되려면 상인 조직을 지원해 협업을 활성화하고, 공동 브랜딩과 지역 대표 상품 개발로 상권 전체의 경쟁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
셋째,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을 지역의 새로운 소비로 연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부산은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이 사상 처음 300만 명을 넘어섰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200만 명 돌파가 예상되는 등 세계인이 찾는 관광도시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기회를 발판으로 골목상권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다국어 안내와 글로벌 간편결제, 온라인 예약 등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소비 유치 인프라를 확충하고, 관광 정책과 소상공인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나가야 한다. 끝으로 소상공인의 디지털·AI 전환도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소비 환경 변화에 발맞춰 AI를 활용한 고객 분석과 디지털 마케팅, 온라인 판로 확대 등 시대적 변화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결국 소상공인 정책은 점포를 지키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장 가능성을 지닌 소상공인이 기업가형 소상공인으로 성장하고, 그 성장이 지역의 특화상권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소상공인은 이제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부산경제를 이끌어 갈 성장의 주체다. 골목에서 시작된 변화가 부산의 새로운 경쟁력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