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 상반기에 부산독립운동기념관(이하 기념관)을 개관한다고 한다. 많이 늦었지만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왜 이렇게 늦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시장의 의지가 박약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면서도 독립운동 관련된 시설이 잘 정비된 대구 경북의 사례로 보아 확실하다. 독립운동, 즉 식민지 민족의 해방운동은 인류가 지향하는 자유 평화 인권 생명에 대한 존엄 등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독립운동이 가지는 함의는 시대를 관통한다. 현재 우리 헌법의 가치와도 다르지 않다.
제2의 도시에다 일제 침략의 거점이었던 부산에 기념공원은커녕 기념관조차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그 필요성은 수십 년 동안 주장됐다. 마침내 2020년 8월 시민사회가 중심이 돼 ‘부산항일독립운동기념공원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부산시에서도 이에 호응해 거금을 들여 위치 선정을 위한 타당성 조사 용역까지 마쳤다. 그 와중에 저간의 이유로 시장이 바뀌고, 후임 시장은 2030엑스포 유치에 전력해서인지 기념관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중 2025년 하반기에 독립공원 조성과 기념관 건립을 위한 시민공청회가 갑작스레 개최됐다. 이 공청회에서는 조사 용역 결과 제시된 장소는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 하야리아 부대를 반환받아 조성한 부산시민공원 내의 여러 장소 가운데 사랑채를 리모델링하는 안이 제시되고 의견이 모였다.
하야리아 부대는 역사성과 장소성, 접근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기념관의 입지로 차고 넘친다. 이곳은 대일항쟁기에는 경마장, 병참기지, 임시 훈련소, 전쟁물자의 임시 야적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이곳에 주둔한 노구치(野口) 부대에서는 한국인을 연합군 포로감시원 등의 군속으로 교육해 동남아에 파견했다. 종전 후 전쟁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한국인은 148명으로, 그중 129명이 포로감시원이었다. 이들 가운데 14명이 사형되고 115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8·15해방 후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영사관과 유엔(UN) 산하 기관, 한국전쟁 시에는 주한미군기지사령부, 전쟁 후에는 군수물자 보급창고와 부산권 미군의 숙소가 건립돼 사용되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독립운동기념공원은 논의에서 사라지고 기념관만 남게 됐다. 그간 지지부진하던 기념관 조성 사업이 갑자기 재개돼 진의를 의심받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2025년 12월 18일 부산시민공원 사랑채에서 기념관 착공식이 진행됐다. 시민단체 대표가 착공식에 감격해서인지 시장에게 보인 각별한 사의가 기억에 남는다.
얼마 전, 제9회 6·3지방선거로 또 시장이 바뀌었다. ‘전임자 흔적 지우기’ ‘전임자 사업 잇단 재검토‘란 기사에 깜짝 놀란다. 그러나 부산 시민의 숙원이자, 보편적 가치를 좇아가는 기념관 사업은 어느 누가 시장이 돼도 흔들어서는 안 된다. 국민주권시대라는데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곡절 끝에 기념관이 개관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데 기념관이 세워진다고 치자. 일찍부터 전문가들이 지적해 왔던 빈약한 조사와 연구로 인한 콘텐츠의 부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오래전 부산박물관 제2전시실과 근대역사관의 전시 콘셉트가 똑같은 것을 목도하지 않았던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독립운동에 대한 선양 활동과 콘텐츠 생산의 저수지 역할을 하는 학술조사와 연구는 최소한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기념’이든 ‘계승’이든 관련된 콘텐츠를 지속해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기본 상식이 됐다. 제대로 된 학술연구가 받쳐주지 못하는 독립운동, 특히 인물의 선양은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가 드러난다. 박재혁 의사, 박차정 의사와 백산, 부산항일학생의거(일명 노다이 사건) 등도 그러하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는 여성 676명을 포함해 1만8776명이다. 출신지 중심으로 경남은 여성 60명 등 1516명인데, 전체의 8.07%이다. 부산과 동래 출신은 여성 16명 등 161명으로, 경남의 10.62%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통계는 부산 동래에서 전개된 항일독립운동에 비하면 독립유공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는 연구가 한창인 여성의 항일독립운동조차 별도로 정리된 바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한 지속적인 전수조사와 연구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관련 기관에서 유인을 창출하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이제서야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가장 늦었을 때가 적기라 했다. 2025년 말 광복회 부산지부가 부산독립운동사를 정리한 ‘부산, 항일의 길’을 발간했다. 이 책은 부산 독립운동의 완결판이 아니라 이제 시작임을 알리는 것이다. 여러 우려는 한낱 기우이기를 믿는다. 아무쪼록 내년 상반기에는 시민의 열망을 담아 멋지게 조성된 기념관 관람을 통해 자부심과 긍지가 드높아진 부산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