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산업통상부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 구축 계획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부산~광주~구미를 잇는 반도체 거점을 새로 구축하는 것이 골자였다. 당시 이 계획은 반도체 기업·인력이 수도권보다 부족한 남부권 산업계에 큰 기대감을 안겼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3대 메가프로젝트’, 그 중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은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 구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들 빅2 기업이 총 800조 원대 자금을 투자해 광주광역시에 팹(Fab·생산시설) 4기 등을 갖춘 반도체 생산거점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 계획이 원활히 추진되면 호남지역은 경기 용인·평택과 함께 글로벌 반도체 거점으로 단숨에 올라서게 된다.
이를 두고 동남권과 대구·경북권에서는 불만을 표출하는 목소리가 일부 나온다. 소외론까지 제기된다. 기자는 이런 목소리에 찬성 또는 반대하거나, ‘왜 우리 지역은 안되느냐’는 식의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분명히 있다. 바로 정부·기업이 남부권에 있는 수많은 지역 중 왜 하필 호남을 선택했느냐다.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삼성과 SK의 이번 결정에는 호남에 있는 풍부한 재생에너지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우창 청와대 국가AI정책비서관도 지난 3일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려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데 서남권에는 재생에너지가 충분히 많고 더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지난 5월 분석 자료를 보면 전국 16개 시·도(세종시 제외) 중 재생에너지 전력자립률(이하 2024년 기준)이 가장 높은 지역은 30.5%를 기록한 전북이었다. 전남(25.9%) 역시 2위 강원(27.5%)에 이어 최상위권에 속했다. 재생에너지 전력자립률은 특정 지역에서 소비된 전체 전력 중 현지에서 생산된 재생에너지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나타낸 지표다.
물론 호남의 재생에너지 자립률이 전국 최고 수준인 것과는 별개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재생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렇다 해도 800조 원대 투자와 관련해 지역 간 희비를 가른 결정적 배경이 재생에너지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대통령 역시 지난달 29일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빅2 기업의 호남 선택 배경으로 풍부한 재생에너지와 용수를 꼽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부산의 재생에너지 실정이 오버랩된다. 발표하는 기관에 따라 수치가 다소 다르게 나오기는 하지만 부산의 재생에너지 전력자립률은 수년째 5% 미만 수준에 머물러 있다. 두 달 전 그린피스 자료만 봐도 부산은 1.9%로 16개 시·도 중 12위에 그쳤다. 물론 호남에는 산지가 많아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치 조건이 다른 지역보다 양호하다. 그렇다 해도 현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대전환’ 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운영의 핵심 동력이 재생에너지라는 점에서, 그동안 국내외 주요 기업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는 점에서 부산이 지금까지 재생에너지 확대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는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태양광 등 설치 조건이 양호한 호남권의 지리적 특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부산의 재생에너지 자립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은 정책적인 노력이 미흡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 충분하다.
정부는 지난 5월 ‘제1차 재생에너지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정책 목표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기가와트) 이상 달성’이다. 전문가들은 이 목표를 상당히 도전적인 수치로 평가한다. 그만큼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대전환’의 핵심 수단이자 산업 발전의 주요 동력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부산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고삐를 조이지 않으면 급변하는 글로벌 에너지 및 산업 패러다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석주 세종본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