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근황을 물어보면 흔히 “뭐 우리 같은 중산층이 뻔하지 않은가”라고 답한다. 대부분 나는 중산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중산층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 통계를 보더라도 우리나라 중산층 이상의 비율이 70~80% 된다고 하며, 상류층에 속하는 많은 사람이 중산층을 자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한때 태생부터 계급이 정해지는 시대가 있었다. 이 때는 태어나면서부터 양반과 상놈으로 분류돼 이 계급의 한계를 벗어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산업화 민주화 시대가 되어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지만 중산층인가 아닌가에 대한 현실적인 사회계층의 구분이 늘 존재한다.
OECD의 중산층 정의를 보면 소득이 중위소득의 50~200%인 가구를 말하며, 따라서 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은 빈곤층, 200% 이상의 계층을 상류층이라고 분류하고 있으나 경우에 따라 50~150%의 기준을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 중산층의 비율은 중위소득 50~200% 기준으로 볼 때 대략 61.1%로 보고되고 있다. 문화대백과사전의 중산층 정의를 보면 ‘경제적 수준이나 사회문화적 수준이 중간 정도 되면서 스스로 중산층 의식이 있는 사회집단을 의미한다’고 돼있다.
우리나라 직장인 대상 중산층에 대한 설문조사를 보면 ▷부채 없이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2000㏄급 이상 자동차 소유 ▷예금잔고 1억 원 이상 ▷해외여행 1년에 한번 이상 다닐 것 등 경제적 수준과 물질의 소유 상태가 기준이 되고 있다.
반면 구미의 각 국가별 중산층 기준을 보면 흥미롭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중산층을 대표하는 신사 계층의 젠틀맨(gentleman)과 에스콰이어(esquire)가 있다. 젠틀맨은 귀족보다 한 단계 아래인 평민 지주 계층(gentry)을 가리키며, 에스콰이어는 중인보다 약간 상위층인 앞으로 기사(knight)가 될 수 있는 기사의 수행원 계층이다. 나중에 산업혁명을 통한 산업화와 민주화로 신분적 의미가 점차 약해지면서 젠틀맨은 신분보다 교양 예의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의미가 됐고, 에스콰이어는 예우 호칭(Esq.)으로 남게 됐다고 한다. 또한 세월이 가면서 영국에서는 ‘신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된다’는 생각과 문화가 자리잡게 됐다고 하며, 이들이 현재 중산층의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영국의 중산층은 ▷페어플레이 ▷자신의 주장과 신념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 등의 행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은 ▷외국어 1개 이상 구사 ▷직접 즐기는 스포츠 ▷다룰 줄 아는 악기 ▷자기 집 고유의 요리 ▷공분에 의연히 참여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 하기 등이다. 미국은 ▷자신의 주장에 떳떳 ▷사회적인 약자 돕기 ▷부정과 불법에 저항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어야 한다고 돼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은 주로 물질적 기준과 경제적 성공 여부지만 서구사회에서는 시민의식을 대단히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한다. 즉 돈보다는 생각과 행동이 중요한 요소로 돼있다.
우리나라에서 길을 가거나 지하철을 타보면 길에 휴지나 담배꽁초를 막 버리는 사람, 지하철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옆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 복잡한 장소에서 백팩을 메고 옆과 뒷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 심지어는 입구를 막고 서서 핸드폰에 몰입해 탑승과 하차에 지장을 주는 사람 등 공중도덕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이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일지라도 중산층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 나오는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천민으로 태어난 아이가 부모에게 신세 한탄을 하자 부모님의 대답이 명답이다. “사람의 귀하고 천함은 그 출신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마음이 착하고 귀한지에 달려 있다”는 대사였다. 참 훌륭한 말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도 이런 정신적 잣대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마음이 헛헛해지는 요즘 나는 자주 ‘우리 모두 진정한 중산층인지 반성해보고, 또 진정한 중산층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곱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