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무엇을 시작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지. 더구나 나이 들어 새 언어를 배우는 일은 녹록지 않은 도전이지만 그래서 또 해볼 만하지 않겠나.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세계와 문화를 알게 될뿐더러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익숙한 모국어의 울타리를 넘어 낯선 언어의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의미 있는 여행이야. 표현 방법이 다른 언어의 구조 속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나이는 또 배짱이란 걸 덤으로 얹어주기도 하잖아.
몇 해 전 전철에서의 일이야. 시장에 다녀오는 듯 무거운 짐을 진 어르신이 자리에 앉자마자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시더라고. ‘Where are you from?’ 맞은 편 경로석에 앉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릴 지르고 있는 청소년들 서넛을 외국인으로 착각한 듯 보였어. ‘저들은 외국인이 아니다, 장애를 가진 친구들 같으니 저 자리에 앉을 수 있다’ 말했지만 그분은 이미 경로석에 대한 설명을 유창한 영어로 쏟아내 주변을 흔들어대었어. 그때부터야. 영어에 대한 내 몸살.
목요일 아침이면 지하철역 근처 작은 찻집 2층은 특별한 공간이 돼. ‘웃는 것도 떠드는 것도 영어식으로! 반복, 반복, 또 반복!’ 뜨겁게 밀어붙이는 젊은 선생님을 가운데 두고 나이를 잊은 학생들은 그저 바쁘지도 급하지도 않아. 달밤에 냇물을 건너듯 더듬더듬 더딘 걸음 발병이 날 만도 한데 서로를 토닥이며 다시 여름을 맞이하고 있네. 뭐 특별하게 뭘 하려고 그러는 것은 아냐. 이미 반세기도 더 전에 쓰고 읽던 낯선 글이 새삼 말이 되어 잘 터지겠나.
길은 많아. 너무 많아서 오히려 어디로 갈까 갈팡질팡이지. 관련 책들은 쏟아져 나오고, SNS엔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교수법으로 학생들을 부르네. AI까지 나서서 대화상대가 되겠다 하고. 우리 클럽은 가끔 현장학습을 병행해. 부산역이나 지하철역에서 외국인들 길 안내하기, 관광지 소개하기, 스터디 자리에 초대해 서로 일상을 주고받기.
젊은 시절의 공부가 그때그때 쌓여 거름이 되어 준다면 나이 들어 하는 공부는 흘러가는 물길인 듯 순간순간 사라지기 바쁘네. 익히는 속도보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몇 배나 더 빠르니 당연하겠지.
하지만 과정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희미해지는 뇌가 깨어나고 활기를 띤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해볼 만하지 않겠나. 주변에 2, 3개 국어는 기본이고 4, 5개 국어를 하는 시니어들도 많네. 그들의 프리토킹을 듣고 있으면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해.
늦은 만큼 그에 맞는 보폭이 필요하지. 수험생도 입시생도 아니니 진도를 나가기 위해 쫓기듯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어. 공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로 즐길 때 효과가 더 클 테니까. 아기처럼 보고 듣고 중얼거리기를 수없이 하다 보면 귀가 열리고 입이 터지지 않겠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어. 가랑비에도 옷이 젖는다는 걸. 콩나물시루 구멍으로 물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도 콩나물은 자라고 있다는 걸. 안개가 걷히면 새로운 그림이 나타난다는 걸.
잊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되잖아. 평생을 써 온 모국어도 아득한데 낯선 외국어를 익히고 꺼내는 일은 더 힘들지 않겠나. 그만두지만 않으면 돼. 지우개가 아무리 지워대도 눌러쓴 것들은 희미하게라도 흔적이 남기 마련이지. 그 길을 따라 자신만의 방법과 속도로 걷다 보면 어느 날 놀랍게도 안개의 시간을 견딘 입이 터지고 오물거리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지 않을까. 머릿속 지우개와의 유쾌한 동행! 좌충우돌 가보자, 친구여. We can do it!
‘안녕하세요?’ 앞에서 걸어오던 외국인 청년 둘이 우리말로 인사를 하네. 예의 바른 웃음을 그득 머금은 채. 나도 손을 들어 흔들며 반갑게 그들을 환영해. 부산엔 외국인들이 많아. 이름난 관광지는 물론 길거리나 지하철, 식당, 시장, 동네 골목에서까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잖아. 그들이 우리 땅에 닿아 우리말로 인사하고 우리글을 공부하듯 우리도 그들의 말로 노래 부르고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것에 익숙해져가야지. 그런데 나 언제쯤 말문이 터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