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려운 기관이다. 특히 녹내장, 황반변성, 당뇨망막증은 대표적인 실명 질환으로 알려졌지만, 공통적으로 초기에는 특별한 자각증상이 없는 예가 많다. 통증도 없고 시력도 크게 불편하지 않아 병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 스스로는 이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야가 좁아지거나 중심 시력이 떨어지고 사물이 휘어져 보일 정도가 되면 이미 상당한 손상이 진행된 뒤인 사례가 많은 것이다.
녹내장은 시신경이 손상되는 질환이다. 한번 손상된 시신경은 현재의 의학으로는 회복시킬 수 없으므로 치료의 목적은 남아 있는 시력을 보존하는 데 있다. 안압을 낮추는 안약을 사용하고 필요하면 레이저 치료나 수술을 시행한다. 황반변성은 망막 중심부인 황반에 이상이 생기는 질환으로, 특히 습성 황반변성은 안구 내 주사 치료를 통해 시력 저하를 늦추거나 일부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당뇨망막증은 당뇨병으로 인해 망막 혈관이 손상되는 질환으로 혈당 조절과 함께 레이저 치료, 안구 내 주사, 수술 등이 필요할 수 있다. 세 질환 모두 공통적으로 조기 발견이 가장 중요한 치료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노안이나 건성안은 환자가 느끼는 불편은 크지만, 대부분 실명으로 이어지는 예는 드물다. 가까운 글씨가 잘 보이지 않거나 눈이 시리고 뻑뻑한 증상은 일상생활의 불편을 초래하지만, 적절한 안경 처방과 인공눈물, 생활습관 개선, 약물치료 등을 통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 불편함의 정도가 반드시 질환의 위험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위험한 질환일수록 조용히 진행되는 예가 많다.
그래서 안과에서는 증상이 있을 때보다 증상이 없을 때 검진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40세 이후이거나 당뇨병, 고혈압,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특별한 이상을 느끼지 않더라도 정기적인 안과 검진을 통해 시신경과 망막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말은 눈 건강에서 가장 잘 적용되는 원칙이다.
이러한 원칙은 사회를 바라볼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은 외부 정보의 80% 이상을 시각에 의존한다. 시각적 소통의 장애는 대인관계에서 오해를 낳는다. 연구에 의하면 녹내장 등으로 시야 결손이 심해질수록 타인의 표정이나 비언어적 신호를 읽지 못해 오해가 생기고, 이 때문에 스스로 사회적 관계를 끊는 예가 많다. 시력 저하를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 치부하며 방치하는 가족과, 이로 인해 우울증과 불안을 겪는 환자 본인 사이에서 정서적 고립과 갈등이 깊어진다. 이는 고독사나 노인 소외라는 가슴 아픈 사회적 문제로 연결된다.
사회갈등 역시 눈에 띄는 충돌이 나타난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쌓여간다. 경제적 어려움, 세대 간의 인식 차이, 지역과 계층의 갈등, 서로에 대한 불신은 처음에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적절한 관심과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작은 균열은 깊은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질병이 진행된 뒤 치료가 어려워지듯 사회갈등도 표면으로 드러난 뒤에는 해결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손상된 시신경을 되돌릴 수 없듯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 사회 역시 갈등이 발생한 뒤 대응하는 것보다 갈등의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를 방치하지 않으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의 원인을 줄여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안과 진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분명하다. 위험한 질환은 대개 조용히 진행되고, 치료의 성패는 얼마나 빨리 발견했는가에 달렸다.
눈 건강도 그렇고 사회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보고 판단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변화를 미리 살피고 대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예방이며, 가장 효과적인 치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