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해양수도로 만들겠다는 논의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2009년 부산시가 해양수도 부산 비전을 공식화한 이후 1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도 부산을 찾을 때마다 해양수도 부산을 공언했지만, 해양수도 부산의 실현을 위한 실질적 진전은 지지부진했다.
그런데 새 정부가 들어서고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해양수도 부산의 꿈은 이제 현실화의 첫발을 내딛는 분위기다. 특히 전재수 전 해수부 장관이 부산시장에 당선되면서 이 꿈은 한 발 더 다가서고 있다. 당선자는 가장 중요하고도 우선적인 공약으로 해양수도 부산 실현을 공언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해양수도 부산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를 실질적이고도 냉정하게 고민할 때이다.
부산이 해양수도로서의 위상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행정 사법 기업 금융 등의 기관 구축과 북극항로 개척은 일차적인 필요조건이다. 그래서 청년들이 부산에 머물고 싶은 양질의 일자리와 정주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런 가시적인 것들만의 여건과 환경 조성으로 진정한 해양수도가 온전히 실현될 수는 없다. 이미 세계적인 해양도시로 거듭난 싱가포르 함부르크 로테르담 리버풀은 단순히 항만 물류나 금융산업만으로 세계적인 해양도시로 성장한 것이 아니다. 이 도시들은 항만이 지닌 바다의 특성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화와 예술의 옷을 입히는 정신 가치 구현을 중요시했다. 이런 정신적 가치의 토대 위에서 세계적인 해양도시가 가능했다. 우리가 추구해 나가야 할 해양수도의 모습은 부산이 새롭게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해양 가치관에 바탕한 해양수도 부산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면 해양이 지닌 가치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인류는 천지인(天地人)의 사유체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인간들은 더 많은 땅을 소유하기 위한 갈등과 전쟁의 역사를 지속해 왔다. 땅 중심의 사유가 남긴 폐해다. 이제 우리는 천지인의 사유체계로부터 벗어나 천지해인(天地海人)의 사유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생태파괴로 얼룩진 땅 중심의 사유를 넘어설 수 있는 해양으로 눈을 돌려 해양이 인류에게 던지는 철학적 사유를 엿들어야 한다. 땅은 생태파괴로 생명파괴의 현장이 되고 있지만, 해양은 여전히 생명의 시원지로서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래서 기후위기 시대를 넘어설 생명사상을 해양은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이 해양이 지닌 원형적 이미지를 해양인문학적 가치로 펼쳐나간다면, 해양의 가치는 인류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담보할 새로운 가치로 승화할 수 있다. 다음으로 해양이 지닌 가치는 공존공영할 수 있는 공해라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육지와 다르게 지구촌 전체가 공유하는 공해가 있다는 것은 더 많은 땅을 소유하기 위해 갈등하면서 상실한 공존성을 회복할 수 있는 해양인문학적 가치이다. 또한 해양은 오대양에서 생성되어 흐르고 있는 다양한 해류의 흐름은 해안의 생태계를 다양하게 형성할 뿐만 아니라, 서로 교류하며 순환하는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해류가 지닌 순환과 교류의 특성은 땅을 경계 지워 국경을 만들고 갈등해 온 인류의 역사를 소통으로 넘어설 수 있는 사유의 터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양은 육지에 비해 열린 개방성과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해양이 지닌 열림이란 원형적 이미지는 부단히 세계를 열어나가는 교류를 통한 평화를 실현해 나가는 해양 가치로 활용할 수 있다.
이상에서 논의된 해양이 지닌 생명 공존 교류 열림의 가치는 끊임없는 전쟁과 갈등이 지속되는 기후위기 시대의 지구촌을 새롭게 회복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주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문학적 사유의 실마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해양의 가치를 근본토대로 삼아 해양수도의 방향성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런 해양인문학의 기초 위에서 해양문화예술이 생성되고, 해양관련 인프라가 다양하게 구축될 때, 세계인들이 공감하고 찾아드는 명실상부한 해양수도 부산으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해양수도를 지향하는 새로운 부산을 설계하는 인수위 활동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염려스럽다. 해양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정리할 팀도 구성하지 못했다. 해양수도완성 부산비전분과는 있지만 이 분과의 주된 역할은 해양물류 경쟁력 강화로 나타나 있다. 해양수도가 지향해야 할 근본적인 토대가 없는 해양수도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인수위에서 정초되지 못한 이 과제를 새 시정을 펼칠 이들이 떠안고 갈 수 있을까? 우선순위로 내세운 민생 문제에 떠밀려 소리 없이 사그라질 것이다. 민생 문제 해결 근본은 몇 푼의 경제적 시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 위기의 부산을 극복하고 나아갈 해양정신으로 하나 되는 시민정신을 곧추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