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삼원색(RGB)은 빨강 녹색, 그리고 청색이다. 이 빛의 삼원색이 모두 합쳐지면 순수한 백색광을 얻을 수 있다. 1960년대 빨강과 녹색의 LED는 이미 세상에 나왔고,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바로 청색 LED였다. 청색만 완성되면 80% 이상의 전력을 절감하며 빛을 밝힐 수 있는 ‘제2의 조명혁명’이 열릴 터였다.
그러나 글로벌 기술기업들은 20년 이상 천문학적인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고도 청색LED의 개발에 실패했다. 청색을 내기 위해 필요한 고품질 질화갈륨(GaN) 결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색 LED의 개발은 20세기 안에는 불가능하다’는 비관론이 학계와 산업계를 지배했다.
이 난공불락의 벽에 일본 도쿠시마의 중소기업 니치아화학공업(니치아)의 연구원 나카무라 슈지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누가 봐도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약 10년에 걸친 기초 연구 끝에 사내 승인을 얻어 청색 LED 개발에 매달렸고, 마침내 1993년 세계 최초로 ‘실용화가 가능한 고휘도 청색 LED’를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나카무라는 이 공로로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인구 70만 명의 도쿠시마현은 이 독특한 서사를 지역 발전의 촉매로 삼았다. LED 산업을 지역특화산업으로 지정하고 관련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유치했다. 오늘날 니치아를 중심으로 LED 기업과 도쿠시마대학 등 산·학·연 기관이 유기적으로 얽힌 150여 개 기업의 1만 명 이상의 고용창출과 함께 매출 7조 원 규모의 세계적인 LED 산업 생태계가 자리 잡았다. 도쿠시마는 이제 일본을 대표하는 LED 거점으로 꼽힌다.
나는 올해 5월 부산 지역 대학 앵커사업협의회의 연수를 통해 일본 도쿠시마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LED 밸리’의 성공 비결에 관한 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는 지역 강소기업들의 혁신적 R&D를 향한 강한 의지와 실행력이다. 니치아의 창업자는 박사 학위조차 없던 젊은 연구원 한 사람에게 회사의 명운을 건 연간 영업이익의 10%가 넘는 거액을 선뜻 내주었다. 이 과감한 베팅 덕분에 나카무라는 수년간 오직 청색 LED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둘째는 지자체의 기회 포착 능력과 지역 산업 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 강력한 산업진흥정책이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을 줄 알아야 한다. 도쿠시마현은 니치아의 이례적 성공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LED 전후방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파격적인 세제·투자 혜택을 제공했고, 현(縣)의 모든 공공사업에 지역 LED 제품을 우선 사용하도록 했다. 그 결과 도쿠시마는 니치아를 구심점으로 한 생태계를 완성하며 일본 LED 산업의 한복판으로 올라섰다.
셋째는 지방대학인 도쿠시마대학과 지역기업의 유기적 협력이다. 평범한 지방 국립대학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대학으로 위상이 높아진 도쿠시마대학은 2019년 ‘포스트LED 포토닉스 연구소(pLED)’를 세워 차세대 광원 연구와 인재 양성에 적극 나섰다. 또한 기업 체험과 기업 문제 해결 프로젝트로 짜인 단계별 인턴십을 운영하며 지역기업 맞춤형 인재를 길러냈다. 이 정교한 프로그램 덕에 지역 인재들이 한 기업에 10년 넘게 뿌리내린다고 한다.
도쿠시마의 사례 앞에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인구 감소, 일자리 감소, 청년 유출, 생산성 저하라는 치명적 문제를 동시에 앓고 있는 부산에 이 이야기가 한 줄기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부산에도 기술력 탄탄한 강소기업이 많다. 이들이 낡은 시장에 안주하지 말고, 니치아가 치열한 저수익 전자부품 시장을 박차고 청색 LED라는 거대한 혁신 시장에 뛰어들었듯, 더 크고 새로운 무대로 나아가야 한다. 지자체는 그 도전을 정책으로 응원하고, 지역대학은 인재 양성과 혁신 연구로 힘을 보태야 한다. 그리하여 청년이 더는 떠나지 않는, 혁신의 심장을 가진 부산이 되기를 염원한다.
이제, 부산의 청색 LED를 찾아 나설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