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관 기념공연을 둘러싸고 시끄럽다. 아니, ‘시끄러웠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지금은 태풍의 눈에 들어간 형국이라 할까. 지난 4월 10일 자로 작성된 관련 업무협약 동의안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오페라 극장 라 스칼라(Teatro alla Scala)와 내년 9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 공연을 포함, 여러 협력사업을 한다는 게 골자다. 1778년 문을 연 라 스칼라는 오스트리아 빈의 빈 국립 오페라 극장(Wiener Staatsoper), 프랑스 파리의 파리 오페라 극장(Palais Garnier)과 함께 전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라 스칼라는 베르디, 로시니, 푸치니 등의 걸작들이 초연된, 유서 깊은 곳이다. 그런 만큼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무대에서 오페라 본고장의 세계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셈이다.
문제는 ‘돈’이다. 부산시(클래식부산)의 관련 업무협약 동의안에 의하면 비용추계는 115억 원 정도다. 시비로 70억 원, 후원과 협찬 등으로 나머지 45억 원의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지난달 초 지역사회에서는 ‘100억 원대 혈세’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100억 원’은 단순하게 따져도 작품당 1억 원씩 100개를 만들 수 있는 액수다. 비난 여론의 요지는 개관 기념 공연에 ‘국내’와 ‘지역’ 대신 외국 극장의 완성품을 가져오는 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다는 것. 이에 시는 2024년 코엑스에서 열린 오페라 ‘투란도트’ 초청 공연에 150억 원 넘게 투입된 점을 꼽는다. 라 스칼라의 ‘오텔로’ 역시 세계 최정상급 공연이어서 많은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맞섰다. 지역·국내 예술인으로 개관 무대를 꾸려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공연 작품을 개관 무대에 세움으로써 새로운 랜드마크의 세계적 위상을 세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예의 코엑스 ‘투란도트’ 공연이 예견된 파행에다 대규모 환불 사태까지 빚은 기억은 아직 생생하다. ‘세계적’이란 이름 값에 ‘매몰’된 결과다. 가뜩이나 초대형 오페라 공연은 20세기의 유물이란 말까지 나오는 이 즈음이다. 외국 스타 마케팅이 국내 오페라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지적이 나온 지도 오래다.
그렇다면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어떤 ‘공공성’을 지닌 공간이어야 할까. 기자는 ‘표상적 공간’ 부산오페라하우스가 ‘현상적 공간’이길 바란다. 표상적·현상적 공간이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주창한 공공성 이론의 핵심 개념이다. 따라서 부산오페라하우스는 단순히 새 랜드마크라는 ‘건축물’을 넘어 진정한 ‘시민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아렌트의 공공성 이론에서 보면 부산오페라하우스의 ‘표상’은 부산의 도시 브랜드 가치와 경제적·문화적 성취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물리적 인프라로서 그렇다. 그런데 현상적 공간으로서 부산오페라하우스는 객석에서 완제품 공연을 소비하는 관객의 공간이 아니다. ‘드러남과 실천’의 공간이다. 그래서 지역 예술가들이 ‘제작 극장’의 주체로 참여하는 한편 시민은 문화적 권리를 요구하며 공론의 장을 열고 다양한 주체가 만나 사회적 관계를 맺는 ‘상호 주체적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현상은 곧 시민이 ‘말과 행위를 통해 서로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지금은 표상과 현상의 불일치가 문제다. 부산오페라하우스가 외형적 웅장함이나 랜드마크와 같은 건축물 자체의 표상에 그친다면 시민과 지역 예술인이 소외되는 문제가 빚어질 수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관 기념 ‘라 스칼라 공연’과 관련한 것이다. 지역 문화생태계의 ‘현상(드러남)’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보다 세계적인(글로벌) 위상을 ‘표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발상은 그래서 위험하다. 지난 12, 13일 BTS의 부산 공연을 보더라도 그렇다. 해당 공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공연을 통해서 ‘세계적인’ 무대 연출·음향·조명 등 공연 인프라의 축적에 가 있지 않았다. ‘아미노믹스’로 대변되는 공연 외적인, 문화·관광 소비가 그것이다. 부산을 찾는 대규모 인파 관리 능력과 K-팝 메가 이벤트 운영 역량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아렌트는 공적 공간이 인간들 사이에 놓여 상호관계를 맺어주는 ‘탁자’와 같아야 한다고 했다.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이 ‘탁자’가 충분히 될 수 있다. 시가 추진 중인 시즌 단원제와 자체 제작(제작극장) 시스템이 그것이다. 이는 지역 예술가가 자신의 ‘말과 행위’를 드러낼 수 있는 현상적 기회를 주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바다를 향해 열린, 시민이 일상적으로 만나 소통한다면 건축적 표상은 비로소 시민적 현상 공간으로 바뀐다. ‘다양성’의 보존도 중요하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플랫폼이 문화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 되지 않게 문턱을 더욱 낮추고 다양한 계층과 세대가 문화적 목소리를 내는 ‘다원적 공간’으로서 자리 잡아야 한다.
오광수 편집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