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고 이해하기 쉬운 그래픽으로 제작해.”, “부작용을 포함해 이 약에 대한 설명을 이미지로 상세하게 그려줘.” 요즘 자주 사용하는 프롬프트다. 이전에 이런 작업을 하려면 수치를 입력한 다음 세밀하게 조정하거나 여러 도구를 번갈아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간단하게 문장을 입력해도 AI가 맥락을 짚어 상당 부분을 자동으로 만들어 준다. 마치 똑똑한 비서가 바로 옆에 있는 듯 복잡한 작업을 도와준다. 어느새 인공지능은 일상의 도구가 되었다.
10년 전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바둑 대국을 벌일 때만 해도 AI는 나와는 관계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많은 일에서 AI를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나의 경우 잘 활용하면 평균 30∼40%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절감되고 결과물의 완성도도 눈에 띄게 좋아진다. 강의용 PPT를 제작하거나 원고 기획과 퇴고, 특히 이미지·동영상을 만들 때 유용하다. 그 외 쓰기에 따라 아주 넓게 응용할 수 있다. 모바일에 앱을 설치해, 길 가다가도 궁금한 걸 대화하듯 바로바로 물어볼 수 있다.
올해 4월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허사비스가 우리나라에 왔다. 이세돌-알파고 대국을 기념하고 AI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그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알파폴드 개발로 2024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허사비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 기술을 바탕으로 생명과학 분야로 진출했다. 그가 설립한 아이소모픽 랩스는 의약품 연구의 속도와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AI 신약 개발기업이다. 획기적인 신약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염원이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기로 악명 높다. 평균 10∼15년 이상의 기간, 수조 원의 비용 그리고 극히 낮은 성공 확률을 견뎌야 한다.
새로운 도구 인공지능이 신약 개발의 높은 벽을 조금씩 낮추고 있다. 아미노산 서열 정보를 바탕으로 복잡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고, 단백질과 결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을 찾아낼 수 있다.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전임상 연구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다만, 독성 약동학 동물실험 등 안전 검증은 여전히 전문가의 판단과 실제 실험이 필요하다. 신약 개발 초기 연구와 분자 최적화에 몇 년씩 걸리던 과정이 단축되면 그 혜택은 환자에 돌아온다. 최근 주목받는 새로운 비만치료제나 알츠하이머약의 가격이 비싼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의 약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 엄청난 비용, 수많은 실패가 그 안에 쌓여 있다.
AI 기술을 신약 개발에 활용한 대표적인 예로 렌토서팁(rentosertib)이 있다. 폐가 서서히 굳어지는 난치병인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를 목표로 현재 임상시험 중인 약물이다. 희귀 난치 질환에서 AI가 새로운 표적을 발굴해낸 것이다. 기존 방식으로는 표적 단백질 하나를 찾는 데만 수년이 걸렸을 것이다. 아직 대규모 장기 임상으로 치료 효과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찾아낸 표적을 바탕으로 설계된 약물이 실제 환자 임상에서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렌토서팁은 신약 개발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약국에서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더 좋은 약은 없나요?”, “부작용이 덜한 약이 없을까요?” 그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AI 신약 개발은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앞당기는 기술이다.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환자에게 맞는 약, 기존 치료제가 듣지 않는 환자를 위한 새로운 선택지, 이것이 신기술이 열어가는 방향이다.
알파고가 바둑판에서 인간의 한계를 흔들었다면, 알파폴드와 AI 신약 개발은 실험실에서 질병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후보물질이 치료제가 되기까지 건너야 할 강은 여전히 깊다. 다만, 그 강에 다리가 놓이고 있다. 언젠가 약국에서 이런 말을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당신에게 꼭 맞는 약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