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들에게 중동국가의 ‘침대 축구’는 악명이 높다. 경기를 리드하거나 무승부만 해도 토너먼트 진출이 결정되는 경기에서는 메소드 연기가 펼쳐진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넘어지고 의료진이 들어오는 등 시간을 끈다. 스포츠맨십에도 어긋날 뿐더러 ‘정당하지 않은 승리’를 인정해주는 꼴이 된다.
우리나라 선거철에도 침대 축구가 기승을 부린다. 선거 구도가 유리한 쪽은 토론회를 피한다. 이대로 가면 승리할 가능성이 큰 데 굳이 토론회에 나갔다가 감점을 당할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18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당시 오거돈 민주당 후보는 토론회를 기피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덕에 무난히 당선된 사례다.
하지만 이번 6·3 지선에서는 토론회 기피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진영 간 대립이 심화되면서 정치 고관여층이 늘어나는 추세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중도층도 후보에 대한 돋보기 검증 욕구가 커진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가 후보의 면면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면서 미디어 환경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다. 이제는 후보가 대중에게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을 수 없는 정치적 환경이 만들어졌다.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았던 서울시장 선거와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토론회를 피한 쪽은 낙선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는 사전투표 전날인 지난달 28일 단 한례 법정 토론회에 참석했다. 토론회 횟수를 늘리자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의 요구를 거절했다. 부산 북갑 보궐에 나선 민주당 하정우 후보 역시 무소속 한동훈 후보의 토론회 요청을 피했다. 전국적인 관심도에 비해 북갑 선거도 법정 토론회 한 번으로 끝이 났다.
현직 서울시장에게 도전하는 정 후보와 대선주자급 거물이 상대로 나온 북갑 선거에서 하 후보가 토론회를 피한 것은 선거 구도를 믿은 탓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에 기대 굳이 유권자들에게 어필하지 않아도 무난히 승리할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읽힌다.
후보가 유권자에게 자신의 정책이나 인물 됨됨이를 보여줄 수 있는 토론회를 피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다 못해 짝짓기 예능프로그램 출연자도 온갖 개인기를 동원해 자신을 어필하려하는데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려는 후보가 그런 기회를 회피하는 것은 후보 스스로 ‘나는 더는 보여줄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꼴이다.
일부 후보는 토론회가 건강한 정책 대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로 일관하기 때문에 오히려 유권자의 판단을 흐린다며 반대 논리를 편다. 후보가 법적으로, 사생활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황당한 네거티브를 펴는 쪽이 감점을 당할 것이다. 악의적인 네거티브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 자신의 의혹이나 약점이 언급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후보 토론회를 대폭 늘려 유권자의 알 권리를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대통령 선거 3회,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는 1회의 법정 토론회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16곳의 시장·도지사 선거에서 토론회는 지역당 평균 1.2회로 집계됐다. 대선 토론회 3회도 부족하지만 총선과 지선 토론회 1회로는 유권자의 판단을 제한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번 지선과 앞선 2회의 지선에서 평균 토론회 횟수는 1.2회에 그쳤다. 이에 따라 대선은 5회, 국회의원과 시장·도지사는 3회, 시·도교육감 3회, 기초단체장 1회 정도의 법정토론회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토론회 확대로 후보의 정책과 자질이 낱낱이 드러나면 정당 공천에서도 법적, 도덕적 흠결이 있거나 정책적으로 준비가 안된 후보는 자연스럽게 걸러질 것이다.
무관심으로 ‘깜깜이 선거’가 되어버린 시·도교육감 선거는 제도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면 토론회 확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정당 공천이 없는 교육감 선거는 늘 유권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 후보들 공약도 특색없이 대동소이하다 보니 인지도 높은 후보가 당선되기 일쑤다. 시장·도지사 선거와 같이 치러지는 덕에 높은 투표율로 묻어가고 있지만 보궐·재선거 등 단독 선거가 되면 투표율은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진다. 지난해 4월 2일 치러진 부산교육감 보궐선거의 투표율은 22.8%에 불과했다.
유권자에게 자신을 감추려는 후보는 선택받아서는 안된다. 잘 보지도 않는 선거 공보물에 예산을 쓰는 것보다는 법정 토론회 횟수를 늘리는 것이 민심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는 선거를 만들 것이다.
윤정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