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된 변비로 버티기 힘들다며 딸의 손을 잡고 병원을 찾은 76세 여성은 약간의 거동 장애도 있었다. 직장경 검사를 하니 항문 주위에 변이 범벅이었다. 단순히 ‘변을 잘 못 보는 문제’로 병원을 찾은 줄 알았는데 환자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눠 보니 변비와 변실금은 물론이고 빈뇨와 절박뇨 등 배뇨장애 증상도 호소했다.
요실금 탓에 병원을 찾은 환자에서 뜻밖에 심한 배변장애가 발견되기도 한다. 골반 MRI와 배변조영검사를 해 보면 직장탈출, 직장류, 자궁질탈출과 방광류 등 구조적 이상이 동반된 예도 흔하다. 환자는 소변과 대변의 문제가 서로 다른 병으로 여기지만, 진료 현장에서는 두 문제가 함께 나타나는 예가 적지 않다.
‘골반저’란 골반 바닥에서 방광, 자궁, 직장항문을 받쳐주는 근육과 인대, 결합조직의 구조를 말한다. 흔히 해먹처럼 장기를 받쳐주는 구조에 비유되지만, 실제로는 훨씬 복잡하다. 골반 안의 장기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근육, 인대, 신경 구조를 공유하며 균형을 이룬다. 이런 이유로 어느 한 부분의 지지 구조가 약해지거나 기능 이상이 생기면 배변장애와 배뇨장애, 골반통, 장기 탈출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중년 이후 여성에서 “변비가 심해졌다”, “잔변감이 지속한다”, “속옷에 변이 묻는다”, “소변이 자주 마렵다”, “오래 걷거나 힘들게 움직이면 밑이 빠지는 느낌이다” 등의 증상을 복합적으로 호소하는 예가 많다. 출산 과정에서 골반 근육과 신경이 손상되고, 오랜 세월 반복된 변비와 과도한 힘주기로 골반저 구조가 점차 약해진다. 노화로 장기의 지지 조직의 탄력은 떨어지고 방광 자궁 직장 등 골반 내 장기탈출은 악화한다.
이탈리아의 대장항문 의사 페스카토리는 골반저 질환을 ‘빙산 질환’에 비유했다. 바다 위로 드러난 빙산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훨씬 큰 구조가 물속에 숨어 있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환자가 느끼고 표현하는 증상은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 아래에는 배변과 배뇨장애, 골반 지지구조 약화, 신경 기능 저하와 함께 심리적 위축과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골반저 질환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 기능이 무너지면 일상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외출 때마다 화장실 위치를 먼저 확인하고, 대변이나 소변이 샐까 불안해하는 삶은 큰 고통이다.
많은 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한다. 변비, 변실금은 대장항문과, 요실금은 비뇨의학과, 자궁탈출은 산부인과에서 별도로 진료 받는다. 각각의 접근은 전문적이고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골반 안에서는 방광과 자궁, 직장 항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단순한 변비로 보였던 환자에서 직장류나 직장탈출, 골반저 협응 장애가 발견되거나, 요실금 환자에서 만성 변비와 배출 장애가 확인되기도 한다.
환자가 증상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거나 의사가 놓치는 예도 다반사다. 변실금, 요실금, 빠지는 느낌 등은 민감한 문제여서 가족에게도 말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구미 선진국에서는 골반저 질환을 단순히 하나의 진료과가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분야 전문가가 함께 접근해야 하는 질환으로 이해하는 흐름이 있다. 대장항문과, 비뇨의학과,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재활치료사, 식이 상담사, 심리상담사 등이 함께 참여하는 통합 골반저 클리닉이 운영되기도 한다. 골반저 질환이 생활습관과 근육 기능, 배변 습관, 심리 상태까지 복합적으로 연결된 기능 질환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골반저 질환은 단순히 장기가 처지는 병이 아니다. 배변과 배뇨, 통증과 삶의 질 전체를 함께 흔드는 기능 질환이다. 이제는 변비, 요실금, 변실금, 골반장기 탈출을 각각 별개의 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골반저 기능 이상이라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환자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