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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구례군 오미리에 있는 곡전재.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곡전재(穀田齋)는 운조루 쌍산재와 함께 구례 3대 전통 고택이다. 구례는 지리산의 바위와 골이 많은 거친 지형을 뜻하는 ‘거칠골’로 불리다가 통일신라시대에 ‘예를 구하는 고을’이라는 한자 지명인 구례(求禮)로 불리게 됐다. 또한 오미리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인데 첫째 안산(案山·앞산)인 오봉산의 형상이 아름답고, 둘째 사격(沙格·산의 품격)이 훌륭하며, 셋째 섬진강을 비롯한 물이 풍부하고, 넷째 기후와 토질, 지세(地勢·땅의 형세) 같은 자연환경이 뛰어나며, 다섯째 거주하기에 좋은 터가 바로 그것이다.
곡전재는 조선 후기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과 독특한 양식을 간직한 고택으로 1929년 박승림이 건립하였으며, 1940년 이교신(호·곡전)이 인수하여 당호를 곡전(穀田)으로 하면서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곡전재는 주산(主山·뒷산)인 형제봉을 뒤에 두고, 섬진강을 앞에 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을 갖추었다. 섬진강을 앞에 두고 있다는 것은 전저후고(前低後高) 지형으로 계곡과 골에서 내려온 물이나 빗물이 강으로 합류하므로 차고 습한 기운과 큰물이 마을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논·밭 가운데 위치한 곡전재는 좌청룡과 우백호, 그리고 안산 등의 고택을 보호하는 산이 부실해 비보(裨補·부족한 부분을 채움)를 해야 한다. 다행히 곡전재의 호박돌 담장과 집 주변을 에워싼 대나무를 포함한 각종 나무가 비보 역할을 하고 있기에 바람과 미세먼지 등을 잘 막아주고 있다. 특히 대나무는 매우 촘촘한 상태로 군락을 이루기 때문에 바람과 미세먼지, 소음 등을 막고 땅심을 강하게 하는데 탁월한 수종이며,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므로 사대부 집안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곡전재는 안채의 내밀한 공간을 보호하고 외부의 흉한 기운을 막기 위해 사랑채와 안채, 좌우 행랑채가 ‘튼ㅁ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또한 집 밖에서 물을 끌어 사랑채 앞 연못에 가두었다가 정문 옆쪽으로 빠져나가는 독특한 수로 구조로, 집안의 물이 용맥(龍脈·정기를 품은 산줄기)의 전진을 멈추게 하여 지기(地氣·땅기운)를 고택에 응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형지기축화생만물위상지야(形止氣蓄化生萬物爲上地也·형이 그치면 기가 쌓여서 만물을 탄생하는 곳이니 상지이다)’라 한다. 당시 영호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부농의 민가 형식 주택인 곡전재는 문간채 사랑채 안채가 ‘一자형’ 구조로 배치됐으며, 2.5m 이상의 높이로 이루어진 호박돌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문은 도로를 보지 않게끔 틀어 외부에서 여자들만의 공간인 안채를 볼 수 없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바람이 사랑채를 바로 때리지 못하도록 했다. 대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집안으로 곧장 들어오게 되면 집안의 생기가 흩어져 ‘기가 빠진 집’이 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며 호박돌 담장 또한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바람은 달갑지 않은 존재로 여기는데, 통상 바람과 물을 함께 묶어 ‘기승풍즉산, 계수즉지(氣乘風則散, 界水則止·기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정지한다)’라 표현한다.
곡전재는 지기가 뛰어난 터를 호박돌 담장이 환형으로 둘러싸고 있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금환낙지형(金環落地形·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선천적 요소인 명당에서 태어나거나 거주하더라도 후천적 요소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곡전재의 안채는 부드러운 생기가 감돌고는 있지만 안채 뒷마당에 있는 장독대에서 강한 생기가 솟으므로 용맥이 최종 안주한 곳이며, 안채와 사랑채는 여기(餘氣·남은 기운)가 있는 곳이다. 곡전재는 생기가 고택 전체를 감싸고 있어 길택(吉宅·복된 집)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