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권은 생명과 같은 귀중한 권리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인권선언’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여성이나 흑인 같은 소외계층이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직장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고, 때로는 목숨까지 걸었던 수백년 투쟁의 역사는 피와 눈물로 점철되어 있다. 민주주의 종주국인 영국조차 1928년에 가서야 ‘21세 이상 남녀’ 모두에게 투표권을 인정했고, 프랑스는 1944년으로 더 늦다. 1948년 정부 수립과 동시에 보통선거권을 부여한 우리나라가 예외적인 케이스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선거 당국의 부실한 선거 관리에 그동안 경고음이 수차례 울렸는데도 안일하게 대응하다 급기야 용지 부족에 의한 투표권 박탈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3일 발표한 용지 부족 투표소는 서울 14곳이었으나 갈수록 늘더니 급기야 부산을 포함해 10개 시·도 91곳으로 확대됐다. 이마저도 앞으로 불어날 가능성이 다분하다. 사고 경위도, 사후 수습도 하나같이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이다. 공정과 신뢰의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며 2030세대가 모인 대학가마저 난리다.
투표권의 가치는 얼마일까. 국내에서는 공무원 잘못으로 3차례 선거에 참여하지 못했다며 위자료를 판결받은 사례, 적정 편의를 제공받지 못해 투표권을 침해당했다는 장애인 소송 사례 등을 종합하면 1인당 30만 원에서 200만 원 선이다. 미국에서는 용지가 없어 투표권을 행사 못한 유권자 2명이 국가에 소송을 제기해 3만 달러(약 4500만 원)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법적 계산법일 뿐이다. 이번 선거만 해도 단 1표로 당락이 갈린 경우가 있다. 나의 투표로 선거 결과가 바뀌고 그로 인해 지역과 국가의 미래가 달라진다면 투표권은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해진다.
반대 상황을 가정해보라. 자신의 우세지역에서 용지 부족 사례가 잇따랐던 서울시장 후보 오세훈이 여당 후보인 정원오에 박빙으로 패배했다면 그 결과를 인정하라고 누가 강요할 수 있겠나. 같은 일이 윤석열 정부에서 터졌다면 더 큰 재앙이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구에서 용지가 없어 투표 포기 사태가 벌어졌다면 진보진영이 과연 이를 묵과했겠나. 현재 잠실개표소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봉쇄시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서울 광화문 일대가 온통 파란색으로 뒤덮이고 재선거 요구와 대통령 탄핵 주장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을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