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 ChatGPT(챗지피티)가 소개된 이래 Claude(클로드), Copilot(코파일럿), CANVA(캔바) 등 수많은 AI 도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놀랄만큼 빠르게 진화할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 파고들어 엄청난 변화와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고작 4년 반 만에 일어난 일이다. 30년 넘게 도시공간을 읽고, 정책을 설계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고민해온 입장에서도 이 속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AI 이전에도 도시공간에 기술혁신은 있었다. 1990년대 공간정보를 컴퓨터 데이터화한 GIS(지리정보시스템)의 구축, 2000년대 초반 정보고속도로를 기반한 U-City(유비쿼터스 시티)의 확산, 그리고 스마트시티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AI가 도시공간, 도시정책에 미칠 영향, 그리고 ‘AI시티’로의 전환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광범위하다.
도시라는 공간에 있어 어떤 AI 도구를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단순한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도시를 읽고 예측하고 설계하는 새로운 도시 운영체계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스스로 학습해 진화하고 도시를 운영할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까지 기대할 수 있으리라. 이와 관련한 몇 가지 담론을 살펴보자.
첫째 AI라는 도구에 압도되지 말 것. 현재의 AI는 용적률 계산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지역 지구 체계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이미지 생성 AI가 그려내는 ‘미래도시’는 대개 현실의 법규·지형·사회적 맥락을 무시한 환상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반전의 출발점이다. 도구의 한계를 정확히 아는 사람만이 그것을 제대로 쓸 수 있다. 오랜 현장 경험과 숙의과정은 AI가 내놓는 답의 어디가 틀렸는지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판별하는 검증 능력이 된다. AI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감독’하는 것, 이것이 도시 전문가와 시민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역량이다.
둘째 기술은 달리고 제도는 걷는다. AI 도구 활용 문제를 넘어 도시정책 전반에서 더 큰 구조적 문제가 있다. 바로 기술과 정책 사이의 속도 불일치다. AI 기술은 월 단위로 진화하는데 도시 인프라 정책은 5년 단위 기본계획으로 수립된다. 지금 막 확정된 스마트시티 기본계획에 명시된 기술 스펙이 계획 완료 시점에는 이미 구식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데이터 거버넌스 문제도 심각하다. 교통 데이터는 국토교통부, 에너지 데이터는 산업부, 인구 데이터는 행정안전부가 각각 관리하는 현실에서 이를 통합하는 일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과제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부처 간 칸막이와 기관 이기주의가 막고 있는 것이다. AI를 도입하기 전에 데이터 공유 체계와 통합 거버넌스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10년째 반복되는 이유다.
셋째 감시와 안전, 어디서 선을 그을 것인가. AI시티 정책에서 가장 민감한 쟁점은 시민의 프라이버시다. CCTV 기반 AI 모니터링, 보행 패턴 분석, 얼굴 인식 기술은 도시 안전을 높이는 데 분명한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일상적 감시 체계로 전락할 위험도 실재한다. 어디까지를 공공 안전을 위한 관리로 볼 것인지, 그 경계를 설정하는 것은 알고리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AI시티 정책의 진정한 성숙도는 기술의 정교함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그 기술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목적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다양한 도시 프로젝트를 공부하며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이 있다. 수단이 목적을 대체하는 순간 그 사업은 실패한다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시티, 정보화 시범도시, 스마트 그린 시티 등 이름은 바뀌어도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이유다. AI도 마찬가지다. 교통 약자의 이동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되는가, 노인 1인 가구의 고독사를 줄일 수 있는가, 탄소 배출을 실질적으로 감축할 수 있는가. 이런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AI를 설계할 때, 비로소 AI시티는 기술 쇼케이스가 아닌 사람을 위한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도구는 바뀌어도 도시를 사람답게 만드는 전문성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