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포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와이탄의 19세기 석조 건물들과 푸동의 21세기 초고층 빌딩 숲의 상하이, 그리고 초량 텍사스 거리의 이국적인 간판 뒤로 펼쳐진 가파른 산복도로의 풍경 부산이 오버랩됐다. 지난 4월 상하이를 15년 만에 방문하면서 변화상에 놀라기도 했지만 다양한 문화를 가진 두 도시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흔히 글로벌화는 도시를 규격화하고 획일화하지만 어떤 도시들은 오히려 이질적인 것들이 중첩돼 독특한 에너지로 발산된다. 튀르키예의 이스탄불과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프랑스의 마르세유 등은 그런 대표적인 장소들이다. 상하이와 부산 또한 여러 이질적인 요소를 지우지 않고 ‘공존’의 자양분으로 삼고 있어 창조적 에너지로 삼기에 충분하다.
상하이는 19세기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의 탐욕 대상이 되면서 중국인과 서양인이 섞여 살 수밖에 없었던 운명. 이 상흔 속에서 서구의 근대성과 중국의 전통이 결합한 상하이만의 ‘하이파(海派) 문화’가 탄생했던 곳이다. 그런데 21세기 현재 황포강을 사이에 두고는 자본의 최첨단을 달리는 금융 요새(푸동)가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 뒷골목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서민들의 골목길과 과거 유대인 난민까지 품었던 흔적들이 있다.
부산은 개항기 왜관과 조계지 역사부터 결정적으로 한국전쟁기 전국 각지의 피란민들을 품었던 기억, 낯선 이방인들과 상이한 지역 문화들이 한데 섞여 정착한 ‘피란 수도’의 유산이 부산 특유의 개방성과 역동성의 뿌리가 됐다. 또 다른 공간 부산은 해운대·센텀시티의 마천루와 근대화의 그늘이자 이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산복도로 천마산·아미동 비석마을, 러시아·중앙아시아 이주민들이 자리 잡은 초량동의 풍경까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 두 도시는 이질적인 것들을 매끈하게 정돈해 박제하기보다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공간 곳곳에 그들의 서사를 그대로 흐르게 하고 있다. 이 두 도시를 보면서 배타성이 지배하는 현재의 우리 모습도 생각해본다. 지금의 세계는 장벽을 세우고 나와 다른 것을 배척하는 길로 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인한 중동 정세, 남과 북의 한반도 긴장 관계가 그렇고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이 그렇다. ‘하나로 연결된 세계’의 환상이 깨지고 자국 중심주의 장벽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공급망 재편이 이루어지고 나와 다른 체제나 사고, 민족 등이 배척되는 세계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상하이와 부산의 역사가 증명하듯 도시의 진짜 경쟁력은 순혈주의가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이 연결되고 충돌할 때 발생하는 창조적 에너지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인종 자본 문화가 투쟁하고 타협하는 과정 자체가 도시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원동력인 것이다.
한국은 이미 등록 외국인 및 이주민 인구가 급증하며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빠르게 진입했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순혈주의적 사고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주 노동자, 다문화 가정, 혹은 외국인 자본을 향한 보이지 않는 경계와 차별은 우리 사회 내부의 심리적 장벽을 공고히 만들고 있다. 최근 한국의 도시 개발은 이질적인 역사와 낙후된 삶의 흔적을 싹 밀어버리고 매끈한 아파트 단지와 유리 빌딩으로 획일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서로 다른 계층과 서사가 공존하던 골목길이 사라진 자리에 자본의 논리만 남으면서 도시의 자생적 활력과 문화적 다양성은 급격히 고갈되고 있다.
이러한 획일화의 흐름 속에서 최근 부산에서 열린 ‘아프리카영화제’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서구 중심의 시선이나 미디어가 규정해 온 빈곤과 갈등이라는 프레임을 넘어 아프리카 15개국의 스크린에 담긴 삶과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요동치는 인간적 서사들이 부산이라는 공간에서 관객들과 만났기 때문이다. 식민주의의 상흔과 근대화의 진통, 그리고 이주와 정체성의 혼란을 다룬 아프리카 영화들은 놀랍게도 개항과 피란, 이주의 역사를 관통해 온 부산의 기억과 거울처럼 닮아 있다. 멀리 떨어진 대륙의 낯선 서사가 부산의 은막 위에서 공명하는 순간 우리는 장벽을 넘어선 또 다른 형태의 정신적 디아스포라를 경험하게 된다.
영화의전당 매끄러운 지붕 아래로 스며든 아프리카의 거칠고도 역동적인 에너지는 도시가 끊임없이 새로운 이질성을 수혈받아야만 비로소 창조적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 부산이 가진 진짜 힘은 초고층 마천루의 세련됨이 아니라, 이처럼 전 세계의 다양한 서사와 디아스포라를 경계 없이 안고 그것들을 살아 숨 쉬는 활력으로 전환하는 개방성에 있다. 요새화와 순혈주의의 유혹에 맞서 나와 다른 서사들을 기꺼이 환대하고 충돌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상하이와 부산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한 도시의 생존 전략이자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