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보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8년 동안 이어진 그의 집권기에 대구·경북(TK)은 ‘보수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국정 기조는 ‘반공주의’와 ‘개발 독재’.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성장으로 인권 탄압 등의 과오는 상쇄됐고, 그의 집권 철학은 자연스럽게 보수의 이념적·정치적 토대를 제공했다. TK 출신들은 입법 행정 사법 군부 등 대한민국 전 영역에서 요직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TK 보수의 위세는 1980년 전두환 정권 시절 더욱 공고해졌다.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 민주화를 이룬 ‘9차 개헌(87년 체제)’으로 독재 정권이 종식되면서 TK 보수도 위기를 맞았지만, 새로운 날개를 달았다. 이른바 1990년 ‘3당 합당’. 존폐의 기로에서 부산 울산 경남(PK) 과의 연대는 TK 보수에 구명줄이 됐다. TK의 민정당은 1987년 12월 대선에서 노태우 대통령을 당선시켰지만, 이듬해 총선에서 과반에 미치지 못하며 참패했다. 노태우 정권은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했지만, 군부 정권 연장선이라는 국민적 반감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민의는 3당 합당으로 뒤집혔다. 1990년 1월 22일 민정당과 PK의 통일민주당, 충청의 신민주공화당이 합치면서 217석에 달하는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이 탄생했다. TK 보수가 세력을 확장해 ‘영남 보수’로 재탄생한 것이다.
PK는 TK 보수의 최대 약점이던 민주화 기반을 제공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PK를 자양분으로 TK 보수의 위세는 이전보다 더 광범위하게 우리 사회 곳곳에서 기득권을 형성했다. 산업화와 군부 세력에 민주화 세력 일부가 합류하면서 완전한 대세로 자리 잡았다.
TK보수는 김영삼 정권 시절 짧게 주류 자리를 PK에 내줬지만,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절정의 전성기를 이어갔다. PK는 늘 ‘진골’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TK 보수를 대표하는 ‘이명박근혜 정권’은 우리 헌정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이 전 대통령은 각종 비리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 벌금 130억 원 등의 형을 선고받았고, 윤석열 정부 때인 2022년 12월 28일 특별 사면됐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2017년 3월 현직 대통령 첫 파면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는 징역 22년과 벌금 180억 원이라는 법의 심판을 받은 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사면 복권됐다.
보수 리더십 몰락은 영남 보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지만, 동시에 새로운 보수로 탈바꿈할 기회였다. 하지만 보수정당은 이런 기회를 걷어찼다. TK를 중심으로 기득권을 놓지 않았고, 반대파는 몰아냈다. PK의 결합으로 형성됐던 합리적·중도보수는 설자리를 잃었다.
정치적 지향점이 더욱 오른쪽으로 향하면서 국민 다수 상식과의 괴리도 커졌다. 이는 검찰 세력에 영남 보수의 주류 자리를 내주는 빌미가 됐다. 결국 ‘윤석열 사단’이 영남 보수 대표로 전면에 나섰고, 윤석열 정권은 2024년 12월 3일 불법적인 비상계엄 사태로 몰락했다.
영남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윤 어게인’과의 절연없이 선거를 치렀다. 닳을 대로 닳은 ‘빨갱이’ ‘종북’ ‘반공’ 프레임을 ‘주적이 누구냐’는 물음으로 다시 들고나왔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산 선거의 전면에 등장한 것도 상징적 장면이다. TK 보수, 영남 보수의 정치적 자산이 완전히 바닥났다는 의미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영남 보수가 이대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자산은 소진됐고 보수의 정신과 정체성, 지향점도 불분명하다. 리모델링이든, 전면 재개발이든 새로운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PK는 영남 보수의 탄생과 유지 동력이었지만,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항쟁’은 박정희 정권 종식의 기폭제였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보수의 길을 향한 열쇠도 부산, 그리고 PK가 쥐고 있다. 역사의 필연일지도 모른다.
박태우 서울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