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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한 청년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타인 도움·선의로 치유

인간에 대한 믿음·희망 끝까지 버리지 말아야

이병승 SAB코퍼레이션 대표이사·루마니아 명예영사

  • 이병승 SAB코퍼레이션 대표이사·루마니아 명예영사
  •  |   입력 : 2026-06-02 19:45:53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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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3일 새벽, 필라델피아 유펜(UPenn) 대학병원 앞 교차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한 청년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친구 조카인 K는 뉴욕대(NYU) 경영학과에서 유학 중이었다. 1학년을 마치고 귀국해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 미국으로 돌아와 복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그는 버스를 타고 필라델피아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내려 우버를 타고 이동하던 중, 신호를 무시하고 돌진한 차량에 들이받혔다. 그는 경추 손상이 너무 심해 하반신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의사는 가족들에게 “지금으로서는 재활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고 말했다. 가족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비극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더 큰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유학생 대부분은 학생 보험에 가입한다. K 부모 역시 한국의 브로커를 통해 보험에 가입해 두었고, 보험 처리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 측의 확인 결과, 브로커로부터 건네받은 보험증서는 가짜로 드러났다. 설상가상으로 사고를 낸 차량은 도난 차량이었고, 우버 측은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입장이었다.

수술비와 치료비는 8억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미국에서 보험 없이 큰 사고를 당하거나 중병에 걸리면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고용주 보험에 가입된 미국 직장인 여섯 명 중 한 명은 보험 혜택을 잃을까 두려워 그만두고 싶은 직장을 계속 다닌다고 답했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서 의료보험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그때 친구들이 나서 이 안타까운 사연을 주변에 알렸고, 자발적인 모금 운동이 시작되었다. 평소 예의 바르고 밝은 성격으로 주변의 사랑을 받던 청년이었기에, 친구들의 진심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처음 목표액이 10만 달러였는데 13만 달러가 모였다. 물론 앞으로 필요한 치료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절망 속에 있던 가족들에게는 큰 위로이자 희망이 되었다.

이후 뉴욕 포스트가 이 사건을 기사화했고, 이를 뉴욕 주재 한국 언론이 다시 다루면서 사연은 더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 기사를 읽은 펜실베이니아 주검찰청의 한 한국계 검사가 그의 가족들에게 직접 연락해왔다. 그녀는 안타까움을 전하며 사고 경위와 보험 문제를 하나하나 확인해 나갔다. 이후 모든상황을 자세히 파악한 그녀는 학교 측에 연락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학교가 유학생의 보험 서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필요하다면 전수 조사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한 것이다.

학교 측은 보험회사와 문제해결에 나섰고, 결국 치료비를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검사의 도움으로 절망의 끝에서 찾아온, 기적 같은 반전이었다. 하지만 진짜 기적은 그 이후에 일어났다. 사고 후 두 달 동안 그는 하반신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미동도 없던 발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재활 병원으로 옮겨져 본격적인 재활치료를 시작했고, 8억 원이 넘는 재활 치료비 역시 보험 처리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세브란스병원에서 1년 넘게 재활 치료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제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에 퇴원했고 오는 9월 복학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보행기에 의지해 걷는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다. 복학 후에도 당분간은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이 친구가 머지않아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던 이 친구가 휴가 나왔을 때 그의 가족들과 함께 만난 적이 있다. 건장한 체격에 환하게 웃던 얼굴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사고 직후 병실에 누워 있는 모습을 카카오톡 사진으로 다시 보았을 때도 놀랍게도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병원 직원들이 너무 잘해줘서 우울할 틈이 없었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절망에 무너졌을 상황에서도 그는 끝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마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의료 기술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강인한 체력과 포기하지 않는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까지 움직이게 만드는 밝은 성격이 기적 같은 그의 회복을 이끌고 있는 듯하다. 친구들의 작은 선의가 모금으로 이어졌고, 그 사연이 언론을 타면서 결국 한 검사의 결단으로 그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우리는 살아가며 인간에게 실망하고 믿음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선의와 진심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것이 우리가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내 놓지 말아야 할 이유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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