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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명의(名醫)와 양의(良醫) 그리고 AI의사

이상찬 세화병원 병원장

  • 이상찬 세화병원 병원장
  •  |   입력 : 2026-05-31 18:48:42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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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금요일 저녁에 아내의 갑작스런 전화 호출로 교회에 가게 되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던 목사의 설교 내용 중 마음에 깊이 남는 성경 구절을 만났다.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빌립보서 2장4절)

이 말씀을 듣는 순간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바로 이런 마음을 가진 의사야 말로 뛰어난 기술을 가진 명의(名醫)를 넘어 환자를 진심으로 위하는 양의(良醫)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내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삶의 다양한 경험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인간은 비로소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는 성숙함을 배우게 된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직후에는 자신이 배운 지식과 기준에 따라 진료를 하게 된다. 그러나 수많은 환자를 만나고 오랜 임상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환자마다 환경과 형편, 삶의 조건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같은 질환이라도 환자의 경제적 상황과 가족관계, 삶의 방식에 따라 치료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좋은 의사란 병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의 삶 전체를 함께 이해하는 사람이다.

과거 1950∼1960년대에는 청진기 하나에 의지해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의 분야에서 명의라는 명성을 얻은 의사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MRI나 초음파 등 첨단장비의 검사 결과를 모든 의사가 똑같이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임상 경험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해 비슷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오늘날 ‘명의(名醫)’는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신 환자의 입장과 형편을 고려해 최선의 치료를 고민하는 양의(良醫)가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러한 사명감을 가진 양의(良醫)가 많았다. 그 시절 의과대학에서 가장 성적이 뛰어난 수재들은 아픈 사람의 생명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으로 내과나 외과 같은 필수의료과목을 앞다투어 지원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의료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 없다. 의사의 진료 과정에서 과실이 없더라도 치료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그 결과 의사면허취소로 이어지는 형사처벌과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냉혹한 현실속에서 오늘날 젊은 의사들은 더는 생명을 살리는 필수 의료과를 지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의대대학 졸업 성적 1등인, 촉망받는 인재들이 법적 리스크가 적은 피부과나 성형외과로 몰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치료 결과만으로 엄격한 형사책임을 묻는 현실 속에서 응급 환자가 갈 곳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응급실 뺑뺑이’ 사태가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양의(良醫)가 되고 싶어도 양의(良醫)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앞으로는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가 직접 마주 앉아 온기를 나누는 대면진료 대신에 AI 의사를 통한 비대면 진료가 현실화할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대한 의학지식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미세 로봇수술 능력을 갖춘 AI 의사가 보편화한다면 의료계에는 거대한 대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더 나아가 개인의 감정이나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환자의 입장만 고려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환자들은 오히려 인간의사보다 AI 의사를 더 신뢰할지도 모른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마음만은 의료의 본질로 남아야 한다. 결국, 미래 의료에서도 가장 필요한 존재는 명의(名醫)가 아니라 환자의 삶을 함께 바라볼 줄 아는 따뜻한 양의(良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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